戰爭(전쟁)이 낳은 反抗兒(반항아)들 땅굴 生活(생활)함께 信仰(신앙)으로 先導(선도) 엠마우스 農場(농장) TV로 紹介(소개)되자 外國靑少年(외국청소년)들 羨望(선망)으로 지켜봐
사회의 냉대 속에서 내일의 삶을 위해 대바구니를 메고 쓰레기통을 찾아다니며 넝마를 줍는 청소년들 이들의 숙소인 개미마을에 따뜻한 새봄과 함께 희망에 찬 즐거운 경사가 났다. 경멸과 천시의 시선을 받으며 일하는 이들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에 가슴 부풀게 하고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발길을 가볍게 하는 즐거운 화제의 초점은 경기도 광주군 모포면 매산리 산17번지다.
이곳에 개미마을 회원 전체의 염원이었던 「엠마우스농장」이 생기게 되어 지금까지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던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이제부터는 떳떳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안정된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논과 밭 그리고 임야 등 6만평인 이 농장은 벌써 일본에서 사들여온 2년생 벗꽃나무로 삥둘러 울타리가 처져있고 그 속엔 임시 일할 회원들이 살 수 있는 토담집 두채가 마련되어 있었고 돼지 15마리가 사람을 반겨 꿀꿀거리고 앞으로의 낙농을 위해 일본산 밤나무(2년생) 5백50주도 심어져 있다. 농장 한가운데 40여평의 온상도 마련되어 있다. 오는 6월 초순엔 5백만원 예산으로 살림집 10채를 짓게되고 현재 결혼한 회원 가족 10세대가 이곳에서 살게된다. 앞으로 회원들은 누구나 결혼하면 이곳에서 살 수 있게될 것이다. 이 소식이 「파리」에 있는 엠마우스 총본부에 알려지자 총본부에서는 아시아경제담당 바라드 신부와 2명의 불란서 TV방송국 기사를 4월 15일 한국에 파견, 한국 개미마을 현황을 촬영하고 갔는데 이것이 28일 오후8시반 TV에 방송됨으로써 한국개미마을 발전상이 국제본부뿐 아니라 불란서 전역에 소개되었다. 불량배의 소굴이라고 사회의 지탄을 받던 기마대본부(전 경제기획원 자리)가 오늘날 외국 불량청소년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소개될만큼 성화(?)되기 위해서는 13년이란 긴 세월동안 자기희생을 아끼지 않고 온정력을 다바친 공로자가 있다. 그가 바로 한국개미마을의 창시자이며 현 개미마을 회장인 박수길(요한=40세)씨. 박 회장이 불량배 청소년 선도에 나선것은 57년 6·25후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거리엔 골목마다 강패들이 득실거렸고 그들의 세력은 당당했다. 당시 JOC회장으로 일하던 박 회장은 사회정화운동의 기수로서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 27의 젊은나이에 거칠은 그들 속에 뛰어들었다.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박 회장은 먹기 어려운 음식을 먹어가며 악취가 나는 누더기에 코를 박고 땅굴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잠을 자며 하지 못하는 담배와 술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하면서 기회만 있으면 노동의 가치와 신성성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여 새로운 생활로 인간답게 살기를 강조했다. 주일이면 돌같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위해 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가서 미사의 엄숙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박 회장의 노력은 1년도 못되어 7백여명의 불량배들을 한데 모으게 했고 영세자는 30여명이나 났으며 그처럼 거칠고 억세던 깡패들은 착하게 살아볼려는 노력이 현저히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박혀진 잔인성과 비뚤어진 생각은 자주 폭발하곤했다. 그들은 박 회장에게 뭇매질을 하기가 일수였다. 뭇매맞은 박 회장은 몇주일씩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었고 그럴때마다 그의 누이는 불량배들에게서 손뗄것을 눈물로서 호소했다. 그러나 희생의 댓가는 꼭 온다는 그의 집념은 버려지지 않았다. 이때 박 회장에게 은인이 나타났다. 현재 신극동주식회사 사장 김봉령씨가 현재 개미마을땅 5백평을 기증했다. 이때부터 1백여명의 회심한 사람들만 모여 정식 개미마을로서 출발했다. 64년부터 일본 개미마을과 유대를 맺고 수차례 내왕하며 국외에 소개하여 67년 12월 5일 엠마우스 전국본부에 정식 가입을 했다. 현재 정회원은 60명, 이중에 결혼한 사람이 10명이다. 직업은 넝마줍는일, 구두닦기, 공사장 또는 회사에 취직해 나가기도 한다. 이들은 하루3끼 식대로 90월만 지불하고 자기가 버는 돈은 월수입 3분지1을 의무적으로 예금한 다음 자유로이 쓴다. 예금한 돈은 박 회장 서명하에 쓰게되는데 주로 시골 자기집에 송금하거나 결혼자금으로 저축된단다. 가장 기뻤을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박 회장은 『뭇매를 맞고 그들이 배신했을때는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그들중 한 사람이라도 개전해서 사과를 할때다』고 말한다. 박 회장의 부인(나루세 다쯔고=30세)은 지금 돐잡이 딸 하나를 데리고 일본 「오사까」에 있는 친정집에 있으며 한국에 와서 개미마을 회원가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편물과 양재를 배우고 있는데 경제가 허락하는대로 곧 한국에 와서 살 예정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