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가 과연 폐지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5월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각계 저명인사 1백92명이 모인 가운데「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앞으로 사형제도 존폐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협의회는 구체적으로 공청회와 토론회 및 사형폐지촉구 국민서명운동 등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한편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도 올해를「사형 없는 해」로 정하고 사형폐지운동을 전세계적으로 펼침에 따라 이 운동은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형폐지론자들은 △사형은 비인도적 형벌이고 △위헌이며 △오판의 경우 돌이킬 수 없고 △범죄억지력도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비인도적인 형벌」이란 점에 대해 이들은 사형제도야 말로「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고대 형벌체제인「동해보복」(同害報復)주의를 답습하는 시대착오적이고 야만적인 형벌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오늘날의 형벌의 주목적은 범인 응징이 아니라 사회방위와 범죄인 교화에 있는 만큼, 이를 위해서 사형시킬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위헌 소송 제기도
사형폐지론자들은 또 사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실제로 동협의회 대표 공동의장 이상혁변호사는 지난 3월4일 현행 사형제도가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주장, 그 위헌여부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한바 있다.
이 변호사는 청구서에서『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제10조 및 12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63ㆍ67년과 83ㆍ87년 등 네 차례에 걸쳐 사형제도의 위헌여부에 관한 상고심이 열렸으나 대법원은 모두「사형은 우리나라 실정과 국민의 도덕적 감정 및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또 사형폐지론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이 재판을 하므로 항상「오판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오판의 경우「전 지구보다 무거운」인간의 생명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6ㆍ25사변 당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으로 사형 당한 최창식 대령의 경우 대표적인 오판 사례로 기록되고 있는데 최 대령은 형집행 십수년 뒤 가족들의 재심청구로 64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우발적인 살인사건으로 2심까지 사형선고를 받고 대법원에서 무기로 감형, 15년간 복역하다 지난 84년 출소한 이래 성남에서 세탁업을 하고 있는 이영태씨(파스칼ㆍ50)는『대법원에서 무기라고 판결했으므로 1ㆍ2심의 사형선고는 오판일수도 있지 않느냐』면서『사형이란 말만 들으면 자다가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사형은 위협력 없어
한편 사형존치론자들이 주무기로 들고 나오는 범죄억지력 즉 위하력(威嚇力)에 대해서도 폐지론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폐지론자들은 사형이 생각보다 위하력을 발휘 못하며, 오히려 극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증가한다고 반박한다.
고려대 김일수 교수(법학)는 동협의회 결성대회중의 기념강연을 통해『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자신만은 체포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아래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사형시킨다 해도 이를 막을 수 없다』며『오히려 사형집행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고갈시키고 일반인의 공격적 파괴본능을 자극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가톨릭의 입장에서는「인간 생명의 주재자는 하느님뿐이므로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펴며 사형폐지를 지지하고 있다.
서울 교도사목회 추영호 신부(사형폐지 운동협의회 공동의장)는『하느님과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이 인간의 회개를 끊임없이 기다리는 과정』이라고 전제, 『인간의 회개는 바로 하느님의 은총인데 그 회개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 말했다.
하느님 권위 침해
성서와 교회적 입장에서 사형제도를 깊이 있게 연구, 「신학전망」64호(84년 봄호)에「사형제도 논고」를 투고한 광주대교구 조철현 신부는 이 글을 통해 사형은 △자연법을 어기는 행위이며 △하느님의 절대권위를 침해하는 동시에 △용서보다 복수를 강조, 그리스도교 정신에 위배되므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신부는 또『그리스도는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사형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주었다』며 징벌보다는 죄인의 인간성 순화를 위한 교화사업과 사랑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의 입장에서도 전부 사형폐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창세기9:민수기35)에는 곳곳에 사형을 주장하는 구절이 나오며 실제「정교분리의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부 보수주의 쪽에서는「세속통치자는 하느님의 권위를 이어받았으므로 사회질서와 공공복리를 위해 범죄인에게 사형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라며 세속의 일로 돌리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한국에서는 고 윤형중신부가 공식적으로 이 같은 입장에 선적이 있다.
사형제도는 이밖에 죄를 회개하고 지극히 선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또다시 죽여야 된다는 점에서 비인도성과 잔혹성의 극치를 이룬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 20년간 서울 구치소에 근무, 교화사업을 통해 2백여 명의 사형수를 신앙으로 인도한바 있는 고중렬씨(베네딕또ㆍ사형폐지운동협 운영위원)는『뉘우치고 참회하는 사형수가「대부님 먼저 천당갑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죽어갈 때 그렇게 마음이 아플 수가 없었다』며『이들은 대부분 돈이 없어 변호사를 제대로 구하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법의 공정한 적용을 위해서라도 사형만은 실시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형폐지론의 이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존치론도 결코 만만치 않다. 요즈음처럼 인신매매사범, 살인강도, 가정파괴범 등 흉악범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때는 오히려 일반 국민들의 여론은 극형ㆍ엄벌주의로 흐르는 경향마저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극악무도한 흉악범이 날뛰는 것은 법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흉악범을 지상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일만이 사회를 보전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흉악범을 논고하는 검사도『피고는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되어야 한다』는 표현을 곧잘 쓰면서 사형을 구형하고 있다.
여론은 사형존치 우세
84년 한국 갤럽이 시행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중 77%가 사형제도를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의 존치이유는 앞서 밝힌 폐지론자들의 주장과 정반대이다.
이들은 △사형은 사람을 죽인자에 대해 가장 공평한 형벌이며 △중대범죄의 예방과 억제효과를 가져와 사회를 보호하고 △국민의 일반 법감정에 부합한다는 등의 논거(論據)를 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사형폐지론자들이 사형은 위하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오늘날처럼 매스컴이 대중화된 시대에는 매스컴을 통한 일반 예방적 효과를 전혀 무시할 수 없다』며『집행은 신중을 기할 수 있지만 사형제도 자체를 폐지하기에는 이르다』며 시기상조론을 개진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이모 변호사는『현재 학계에서는 폐지론이 지배적이지만 재조 법조계에서는 존치론이, 재야법조계에서는 시기상조론과 점진적폐지론이 우세하다』고 말하고 특히 존치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지 문제 때문에 입장표면을 삼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10년간 2백여 명 선고
한편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한 88년판 사법연감에 따르면(도표참조) 지난 78년부터 87년까지 10년간 총2백38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몇 명이 집행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형이 없는 나라는 총79개국인데 이중 완전히 폐지한 나라는 서독ㆍ프랑스 등 35개국이며, 전시범죄 등을 제외한 일반범죄에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이탈리아ㆍ영국ㆍ브라질 등 18개국,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 처형이 없었으며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홍콩ㆍ바레인 등 26개국이다. 반면 사형을 실시하고 있는 국가는 남ㆍ북한을 포함, 미국ㆍ소련ㆍ일본 등 1백1개국에 이른다. 사형제도 존치국가들은 미국(26개주에서 폐지) 일본 등 국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프리카와 공산권의 후진국들인 점과 지난 10여년 동안만 해도 필리핀ㆍ동독ㆍ엘살바도르 등 21개국이 사형폐지국으로 돌아선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폐지국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사형폐지는 곧 세계 보편적 추세로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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