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명동대성당 미사에 참예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성당을 압도하는 장엄한 성가에 매혹되기 마련이다.「그레고리안」에서「모짜르트」의 대관 미사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터리로 한국 가톨릭 합창단 중 최고봉을 이루고 있는「서울가톨릭합창단」이 올들어 창립 서른 돌을 맞는다.
서울 가톨릭 합창단이 창립을 본 것은 1939년으로 노기남 대주교가 한국인으로 처음 서울교구장이 되던 해이다. 처음 출발은 남성 3부로 구성된 남성 합창단이었다.
첫 지휘자는 불인 보댕 신부, 이때 부른 노래들은 헨델의「라우다떼」「오살루따리스」등 지금은 시골 성가대도 입에 오른 쉬운 곡이지만 그때로선 대단한 실력이었다.
몸이 약했던 보댕 신부가 하대웅 씨 (현 효성여대 음악과 주임) 에게 지휘봉을 인계하고 이문근 신부가 신학교를 갓 졸업, 명동 보좌로 있으면서 2년 반 가량 반주를 맡았다. 43년 따로 여성부가 생겼지만 감히 성당 안에서 혼성 합창은 엄두도 못 내고 남자가 10시 미사에 노래 부르면 여자들은 성체 강복을 맡는 등 엄격한 남녀유별 속에 지내다 이듬해인 44년 문화관에서 열린 이기준 (토마 명동 3대 주임) 신부 회갑연을 계기로「랑데뷰」가 이루어져 이때부터 혼성 합창단으로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 후 45년 12월 가톨릭청년연합회 주최로 현 문화관에서 첫 음악회를 가진 것을 비롯, 46년 복자 김대건 신부 순교 1백주년 기념 음악회 (국립극장) 47년 전재 교구 위안 음악회 (문화관) 48년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 (국립극장) 를 여는 등 매년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열어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종교음악을 지식층에 전달하는 데 큰 몫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6ㆍ25 동란을 만나 뿔뿔이 흩어졌다가 9ㆍ28 수복과 함께 다시 모여 북진하는 국국을 따라 51년 1월 평양에서 북한 동포 위문 음악회를 갖기로 가슴이 부풀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51년 1월 3일 마지막 남행열차로 남녀 단원 40여명이 집단으로 대구로 피난길에 올랐다.
북진 소식에 들떠 피난 준비를 못했던 당시 젊은 단원들은 함께 대구에 정착했지만 전시에 40명 대구가 먹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국방부 정훈국과 줄이 이어져 군속으로 채용되어 군가 보급, 병원 위문 등을 하면서 계산동성당 구내 한옥 한 채를 빌어 기거하다 약 3개월 후 해산, 각자 연고지로 흩어졌다.
이 3개월 간 생활을 당시 부단장이면서 종군기자로 활약하던 신태민 씨(현 서울신문 논설위원)는『지금 생각하면 그런 고생이 없었지만 그때는 고된 줄도 모르고 부대로 병원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정훈국에서 배급을 타 오지만 피난길에 어려웠던 음악인들이 여럿 끼어서 쌀이 모자라면 죽을 쑤어 먹기도 했고 미군 방송국(WVTP)에 나가 노래를 부르고 그 출연료로 모자라는 식량과 부식을 보충했지요. 불도 못 땐 냉방에서 자고 아침에 남산동 주교관「루르드 성모」동굴까지 노래를 부르며 가던 그 마음의 평화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고 회상한다.
그때 정훈국에서 소위로 근무하던 교우 엄익채 씨(현 산업은행 비서실장)가 이들의 뒷바라지에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다.『대구에 피난왔던 음악인들이 저녁만 되면 몰려오는데 한동안 소주와 오징어 사다 대느라 월급은 만져 보지도 못했습니다. 잠자리가 모자라 어떤 이는 다락에서 자기도 했는데 그 추위 속에서도 용케들 지냈지요』
그 후 한동안 침체기를 거쳐 58년 창립 20주년 기념 공연(국립극장) 66년 병인순교 1백주년 기념 음악회 (시민회관) 69년 이문근 신부 은경축 기념공연 (국립극장) 70년 정기연주회 (국립극장) 71년 정기연주회 (명동대성당) 를 갖는 동안「서울 가톨릭 합창단」은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합창단으로서 착실히 발전해와 지금은 단원 51명을 거느린 한국 굴지의 합창단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간 이 합창단을 거쳐 간 사람 중 정훈모ㆍ김대붕ㆍ하대웅ㆍ김기우 씨 등은 아직도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신태민ㆍ엄익채ㆍ정정숙ㆍ안웅열ㆍ최상선ㆍ이세혁 씨 등은「메아리클럽」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옛정을 나누고 있다.
현재 합창단 운영은 본당 보조와 혼배미사 예물로 충당하고 있고 단원 간의 화목이 큰 자랑이다. 그 예로 지난 10년 간 단원끼리 결혼한 사람이 20쌍에 육박하고 있는데 결혼 후 부부 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쌍도 있다.
연습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간 정도이고 단원 모집은 연 2회,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지만 적어도 종교들이 해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들은 몇 해 전부터 순회공연을 하고 있지만 경비 관계로 실현을 못 보고 있는데 오는 부활절을 기해 명동성당 파이프 오르간 구입 기금 모금 공연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