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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수필] 친정가는 길/ 윤안나

대구시 남구 상인동 송현주공 고층아파트
입력일 2019-12-10 10:17:39 수정일 2019-12-10 10:17:39 발행일 1987-10-04 제 1574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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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버스가 하루에 겨우 서너번 왕래하는 충남 서산에서도 더 들어가는 거성리란 작은 마을이다.

맑은 시냇물을 끼고 있는 마을인지라 어릴때 넓은 시냇가에서 동네 아이들과 모래성을 쌓으며 소꿉놀이 하던 기억은 언제나 되새겨지지만 그이와 함께 가기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였다.

그러던 차에 지난 9월중순께 나는 드디어 그이와 함께 친정에 가기로 약속을 받아내게 됐다.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던 약속날이 되자 그 이는 또 회사일 때문에 못가게 되였다는 것이다. 나도 그만 주저 앉고 싶었지만 고향땅의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의 모습이 아른거려 어쩔수 없었다. 더구나 전화까지 해놓았으니 안 갈수가 없었다. 일밖에 모른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지만 어린딸만을 업고 길을 떠날수 밖에….

대구역에서 대전까지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버스로 갈아탔다. 차창에 비치는 들판은 황금빛 물결이었다. 넓디 넓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이 저 들판에 가득 스며들어 있음인가!

가을이 완연히 스며들어가 황금 물결의 파도를 이루는 들녘은 이름없는 농부들의 헤아릴수 없는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져 영글은듯 보였다. 그위에 비치는 저녁 햇살은 마치 가을의 결실을 축복해 주는 성령의 손길처럼 정답고 포근하게만 느껴졌다.

내 귀염둥이 두살박이 외딸은 연신 창가에서 참새처럼 재잘거린다. 제눈엔 생소하기만한 들녘이 아름답고 풍요로운가 보다.

하느님의 크신 힘과 은혜와 친정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대조되여 머리를 가득 채운다.

언제쯤 농부인 내 아버지가 겨울날 저 황량했던 땅들을 황금빛 들녘으로 만들기 위해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하느님 안에서 찾을 수 있을까? 비가 오나 가뭄이 드나 하늘이 도와주길 빌론하던 아버지이시지만 풍성한 결실의 깊은 의미가 자연의 변함없는 섭리인줄로 알고계심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양심껏만 살면 된다고 하시는 아버지께 푸짐한 땀의 결실을 주신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참으로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드릴수는 없을까? 하느님 아버지께서 집지어 주시지않으면 집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고 하느님이 농부의 땀이 또한 헛되다는 사실을 내 아버지께서 믿을 수 있다면…

친정집이 있는 정답고 평화로운 마을어귀에 들어서자 푸근한 마음과 함께 작은 고민이 내마음 한구석에 자리한다.

대구시 남구 상인동 송현주공 고층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