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공산체제하에서 극도로 위축되어있던 체코 슬로바키아교회가 최근 고르바초프의「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에 의해 사회분위기가 자유스러워짐에 따라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등 점차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체코국민에게 있어 교회는 지난 수세기동안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을 통치해온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가의 압제와 동일시되어 왔으며, 사회발전에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던 체코 가톨릭교회는 1948년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래 공산정권의 극심한 탄압과조직적인 통제로 크게 위축되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탄압에 직면해 침묵을 지키던 체코교회가 올해 들어 입장을 크게 변화시켜 전면적인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등 쇄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가장 큰 움직임은 올해 초 체코 모라비아지방의 벽지의 한 농부인 오거스틴 나브라틸에 의해 시작된 종교자유청원운동이었다. 그는 완전한 종교자유를 청원하는 31개항의 청원서를 작성, 이 나라 전체의 가톨릭신자들에게 우편 송달했는데 이것이 의외의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켜 4개월 후인 지난 5월에는 5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8월에 들어서면서 이 청원운동은 20년 전「프라하의 봄」이 좌절된 이래 가장 극적인 반체제 항의로 발전, 지난 8월 21일 소련의 체코침공 20주년을 맞아 약 1만명의 프라하시민들이 벤체슬라스 광장에서 소련군 철수, 언론검열 폐지, 68년 개혁운동의 분쇄 뒤에 박해받은 사람들의 복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의 최대의 적인 공포를 극복해야할 시기가 성숙했으며, 경찰이 나를 위협할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다. 』고 단언한 청원운동주동자 나브라릴은 국립정신병동에 수감될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잡지를 발행하는 등,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계속된 투쟁에 열중하고 있다.
이러한 신자들의 청원운동에 발맞추어 교회도 자체 쇄신에 힘쓰는 한편, 종교자유의 확대를 위해 대정부 투쟁에 노력하고 있다. 국가로부터 성직자 자격을 박탈당할 경우, 가장 비천한 노동을 해야 하는 위험성에도 불구, 다수의 성직자들은 종교자유 획득을 위한 지하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 프라하대교구 교구장인 프란티세크 토마세크 추기경은 오랫동안 견지해온 보수적 입장을 버리고 8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확실히 천명하고 있다.
그는 전교의 분리, 독립적인 평신도조직의 창설 사라진 수도원의 재창설을 촉구하고 있는 나브라틸의 청원문에 권두서한을 쓰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의 자기쇄신노력, 그리고 국민들의 인군신앙운동에의 참여는 그동안 교회의 지도력을 외면해온 체코국민들로 하여금 교회를 다시 찾게 만드는 커다란 계기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 이데올로기가 남겨놓은 정신적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교회에 떼를 지어 찾아가고 있으며 일요일에는 혼잡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가톨릭교회가 부응하는 모습을 신학자요 세프 쯔베리나는『이제우리는 노인을 위해 동정을 베푸는 교회가 아니라 젊은이를 위한 쇄신하는 교회다』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런데 체코교회가 올해 들어 이처럼 인권 및 종교자유운동에 앞장서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가져다준 정치적 해빙의 분위기가 가장 크다. 체코의 가톨릭신자들은 소련에서의 종교자유를 확대시키려는 그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으며 최근 모스크바에서의 그리스도교전래 1천 주년 기념식을 지켜본 이후, 큰 희망에 부풀어 있다.
트르나바교구의 얀 소콜 주교는『체코 정부도 고르바초프를 당황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와 비슷한 양보를 해야 할 상황에 처할 것』으로 전망하고『모든 것은 소련에서의 상황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회의 종교자유 요구에 대해 체코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종교자유 청원운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서명된 속임수라고 일축하면서도 교회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등 점점 종교자유로 확대하고 있다.
체코정부는 올해 7월에 1973년 이래 처음으로 바티칸이 3명의 주교를 임명하는 것을 승인하는 한편, 새로운 남자수도원 몇 개를 창설하도록 허용한데이어 평신도부제가 종교봉사 단체를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을 철폐했다.
서방교회의 입장에서는 그만한 정도의 진보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으나 체코신자들은 커다란 진보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동구에서 가장 강경한 탄압정권인 체코정권 조차도 50만명 이상의 국민의 목소리를 묵살살수 없다는 것을 입증한 커다란 승리시작으로 받아 달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