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들에게 포기와 양보의 미덕을 끊임없이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
포기하고 나누는 일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에 속하는 일이다. 무엇을 자유롭게 양보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심과 쾌락의 노예가 된다. 쉽게 유혹에 넘어지고 외적인 영향들이 그를 마음대로 조종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싶어한다. 포기하는 것보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로 기울어져 있다. 나눔은 원래 인간이 타고난 성품이 아니며 저절로 생기지도 않는다. 서서히 배워가야 하는 일이다. 무엇을 단념하고 나누어주는 일은 인간의 높은 문화행동이다.
여러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한 사람은 이미 어릴 때부터 가지가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공동생활이 원활해지도록 개인의 욕심을 다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단념이나 포기란 무엇인가? 기꺼이 하고 싶은 일, 누리고 싶은 것을 얼마간 스스로 하지 않거나 누리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러한 태도를 조심스럽게 가르쳐야만 한다. 그리고 포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길은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치는 일이다. 가정에서 특히 자녀가 많은 가정에서 이런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밥상에서, 놀면서, 대화 중에 등등.
아이들이 남에게 무엇을 나누어 줄 때 그 때문에 어떤 대가가 보상을 바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잘했다고 보상을 해주게 되면 아이들의 버릇을 나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방약무인의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것이고 나중에 커서도 확실한 보상을 챙기기 전에는 결코 무엇을 나누어 주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아이들도 나눔의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다.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갖고 이것조차 나누어 주도록 훈련이 되었다. 눈깔사탕 4개를 가지고 5명의 형제들이 나누어 먹어야 했다. 오늘의 아이들은 이 작은 사탕 봉지를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누어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포기를 배우는 또 하나의 방법은 선물을 주는 일이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법을 일찍부터 가르쳐야 한다. 선물을 주는데 특별한 동기나 시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 값 비싼 물건이 아니라 자기가 그린 그림 공작 꽃 등의 선물이 큰 기쁨을 줄 수 있다. 선물은 우정을 지속시켜 준다. 기쁨과 행복을 가져온다.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에게 포기하는 것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와 스승의 표양이다.
이는 수천 가지의 좋은 말보다 더 큰 힘이 있다. 예컨대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갖지 않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포기의 뜻을 깨우쳐주기 힘들 것이다. 경험이 많은 한 교육자는『당신이 매일 몇 시간씩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좋은 프로그램을 골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쇼윈도 안에 진열된 옷을 보고 참지 못하면서 아이들이 나쁜버릇을 갖지 못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외지(外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