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배문한 신부 장례미사 중 추도사

입력일 2017-08-18 11:14:36 수정일 2017-08-18 11:14:36 발행일 1994-08-14 제 191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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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새롭고 완전한 삶의 시작

존경하는 배문한 도미니꼬 학장 신부님. 살신성인으로 죽어간 한 사제의 죽음이 TV를 통해 전해졌을 때『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주며 느끼지 못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신자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 사람이 됩시다』라고 그토록 강조하시더니, 기어코 사랑으로 삶을 마감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신부님과 처음 만난 이래 항상 우러러 보이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한결 더 높게 보였습니다.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 교수로 또 학장으로 오래 계시면서『내가 누군가 하면은 공장장이야. 무슨 공장장인가 하면은 핵폭탄 공장장이야. 무슨 폭탄인가 하면 사랑의 핵폭탄이야. 폭탄을 만들다 보면은 말만 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불발탄도 있고 쏟아야 하는 곳에 쏟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사랑을 쏟는 오발탄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사랑의 폭탄 제조를 중단할 수야 없지』하시면서 신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 가슴 속에 사랑을 심어주어 그들 모두를 사랑의 혁명가로 만드시겠다고 하시더니 이제 신부님께서 당신 스스로 하느님 사랑을 위한 한 알의 썩는 밀알로 사랑의 폭탄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는 쉬운 글로써 성인들의 행적이나 말씀들을 소개하시면서 말없이 스스로 성인이 되시는 수업을 하셨습니다. 한 마디 할 때마다 두세 번씩 꼭 기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언제나 사랑 가득한 침묵으로 듣기만 하시다가 어쩌다 한 마디 하시면 듣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운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신부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신부님과 함께 산보하고 싶어하고 대화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신부님, 이제 누구에게서 신부님처럼 두세 번 기도로 완성된 말씀을 들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는 하느님 품으로 떠나시기 직전에 보내주신 신부님의 마지막 저서「그 나라가 임하시며」를 반갑게 잘 받았습니다.

「주의 기도」를 해설한 이 책을 들고서 신부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읽겠습니다. 신부님의 깊은 신앙과 영성생활이 배어나는 이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죽음은 새로운 삶, 완전한 삶, 충만한 삶의 시작이요 죽음을 통하여 진선미 자체이신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으니 절망보다는 희망을, 슬픔보다는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지면 죽음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고 사도 바오로처럼 그리스도와 같이 죽기를 소원할 것이고 성녀 소화 데레사처럼 못 죽어 죽겠노라 하며 하루 빨리 주님 곁으로 가길 소원할 것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 존경하는 배문한 도미니꼬 학장 신부님. 이제 천상에서 우리를 도우시어 우리도 주님께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못 죽어 죽겠어」하고 말하게 도와 주소서.

제 영혼과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천주의 자비하심으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1994년 8월 8일 박석희 주교〈안동교구장〉

◆존경하올 배문한 신부님 영전에

존경하올 신부님, 신부님 영전에 글월을 드리려니 가슴이 떨리고 팔이 떨리고 몸이 떨립니다.

신부님, 도미니꼬 학장 신부님. 저희 학교 8월 행사표 중에는 신부님의 영명축일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도미니꼬 사제축일입니다. 신부님 영명축일을 축하드립니다. 기쁘게 받아 주십시오!

그런데 오늘 신부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대접해 드리며 웃음 지으며 노래하는 날, 신부님을 모시려 해도 모실 수 없어 이렇게 큰 소리로 신부님을 불러봅니다.

존경하올 신부님, 도미니꼬 학장 신부님. 대답하여 주십시오. 신부님께서 친히 가르치고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오늘 신부님 곁에 급히 달려와 신부님의 천상 탄일을 경축하려 합니다. 신부님의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뒤로 하고 먼저 주님 곁에 가실 수 없지 않습니까? 왜 먼저 가셔야 했습니까? 아무리 정을 떼려 해도 뗄 수 없으시지요? 그런데 왜 불러도 대답이 없으십니까?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숨은 가슴에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간직하시고, 말없이 넓게 고루고루 어루만지시던 신부님의 사랑을 받으려 신부님의 제자들이 모두 모여 와 있습니다.

오늘 도미니꼬 사제의「그리스도의 향기」를 따라 달려온 신부님의 제자들에게 천국의 사랑 가득한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 천상 성인들의 잔치상에 올라 더 크고 더 아름답고 더 기쁜 축복을 받으시는 신부님의 사제적 삶의 모범을 닮아 신부님의 제자들 모두가 착하고 어질고 고요하고 평온하고 그리고 고루고루 넓게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제 되도록 주님께 은혜를 빌어 주십시오.

신부님께 기쁨을 더해 드리지 못한 마음이 송구스럽고 또 얼굴을 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 괴로운 일에도 무언으로 답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신부님의 마음을, 신부님의 제자들 이외에도 이제는 수 많은 분들이 알고 느끼며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신부님을 떠나보내 드리는 오늘, 신부님으로부터 받은 깊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며, 크거나 작게 신부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모든 점들을 용서 청합니다.

도미니꼬 신부님! 신부님의 제자들을 주님 곁에서 더욱 사랑해 주시고 안아주시고 어루만져 주십시오. 이 땅의 착한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축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제는 저희 곁을 떠나 주님 곁에 가 계시는 도미니꼬 신부님! 훗날 저희들이 주님께 이르러 신부님을 뵙게 될 때에, 다시 신부님 곁에서 살 수 있도록 반겨 맞아 주십시오.

도미니꼬 신부님! 베풀어주신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이 잠드소서! 주님의 구원의 축복을 받아 영원한 복락을 누리십시오.

1994년 8월 8일 도미니꼬 사제축일에 이정운 신부〈수원가톨릭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