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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유감] 마흔번째 생일 / 박용식 신부 ②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북평주임
입력일 2017-08-13 10:26:46 수정일 2017-08-13 10:26:46 발행일 1992-11-29 제 1832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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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미국에서 마흔번째 생일을 맞았다. 신부들은 영명축일에 축하를 받으니까 생일을 잊어버리고 넘기기가 일수인데, 그 날은 데레사씨가 찾아와서 그 날이 생일임을 일깨워주면서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나는 거절 할 이유도 없고 해서 그녀의 차에 탔다. 데레사씨는 시내 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주택가쪽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함께 가기위해 서란다. 그녀의 집앞에 와보니 어두운 저녁임에도 한등의 불도 켜져있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집안에 들어갔다 나오자고해서 나는 현관에 들어섰다. 캄캄한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펑 소리가 나면서 머리 위로 무엇인가 와르르 쏟아지더니 갑자기 여러개의 조명등이 켜지면서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눈 앞에는 온통 실내 전체를 화려하게 꾸민 각종 장식들 조명등 색종이 풍선들이 보이면서 예쁜 한복을 차려입은 엄마들과 정장을 한 아빠들이 눈 앞에 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곧이어 해피버스데이 노래가 울려나왔고 무엇엔가 흘린것 같은 나는 너무도 어리둥절 해서 나도 모르게 그냥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실에는 음식과 과일 술 스낵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축 생신」이란 글귀가 여기저기 걸려있고 풍선과 색종이들이 나부끼는 가운데 가장 커다란 진한 글씨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Over the hill」이었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이란 뜻이다. 미국사람들 풍습으로 마흔번째 생일을 인생의 정상으로 보고 이제부터는 인생의 내리막 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40회째 생일은 특별한 뜻이 있기에 더욱 거창하게 축하식을 한단다. 하여튼 이 모든 계획은 극비밀리에 계획되었고 나는 전혀 눈치도 못챈채 고스란히 당했기에, 깜짝 놀라게해 주려는 그들의 내리막길 음모 (?) 가 1백% 달성된 날이었다. 나는 그날 사목위원부부들인 그들과 함께 밤새워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나도 이제 정상을 넘어서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아직도 마음은 애들같은데, 아직도 행동이 소년같은데, 아직도 애들하고 노는게 싫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 내리막 길이라니!

11월이 되면 거의 매일 미사중에 죽음에 대한 성경말씀을 듣게된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11월만 되면 40회째 생일파티가 생각난다. 내리막 길에 들어선지 벌써몇년 되었으니, 지금 쯤은 과속이 불어서 더 빨리 달리고 있는게 아닐까? 죽음을 향해서 말이다. 어차피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게 인생이라면 운전대를 힘있게 똑바로 잡아 차선을 이탈하지 않으리라. 한눈을 팔지않음으로써 중앙선을 침범하지도 않고 무리한 추월도 하지 않으리라.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마흔번째 생일을 기억하고 싶다.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북평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