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병자들의 희망과 축복의 성지「루르드」

입력일 2017-04-20 11:54:06 수정일 2017-04-20 11:54:06 발행일 1992-03-15 제 179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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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로 표현 못할 진한 감동 느껴
하느님 받드는 겸손만이 가득
의학상 설명안되는 6천여 치유사건 발생…새 믿음 배워
성모송ㆍ거룩하시다ㆍ호산나 등 밤낮으로 끊이지 않아
1858년, 피레네 산맥에 있는 작은 마을 루르드에서는, 자브강변의 동굴에서 작은 소녀 벨라뎃따 수비루에게 성모님이 발현했다. 그후「기적」이 일어난다고 대서 특필되는 이 성모발현 성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왔다. 나는 루르드를 순례한 사람들로부터 루르드에서 겪은 일에 대해 설명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을 한 번만이 아니라 그것도 여러 번들었다. 나는 림부르거호프의 루르드 성지 순례단과 함께 루르드에 갔다. 과연 그 말이 맞았다. 그곳의 분위기, 경험과 만남,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필설로 어떻게 옮길 수가 없다.

우리들은「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로사리오 기도로 밤기도를 끌맺었다. 나는 수없이 이 귀절을 듣게 될 것이고, 그들의 기도와 묵상, 잠심의 분위기는 아침까지 내마음속에서 울릴 것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아직 우리는 여행중이었다. 거의 길이 5백미터나 되는 기차 속에서 우리는 밤을 보냈는데 독일 각지에서 온 2천7백명의 순례객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루르드 성지를 처음 순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곳 프랑스의 성지에서 그들은 다시 영적인 회복을 간구한다. 한 순례객은, 하느님의 가장 큰 주유소인 루르드에서 힘을 얻고, 새로운 희망을 경험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 병자 객차도 마련

우리가 탄 기차에는 병자객차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 순례 여행에는 노쇠하고 중병에 걸렸으며 불편한 60대의 노인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들과 더불어, 그들을 돌보아 주고 밤에는 잠자리를 보아주는 친절한 보호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는 이 루르드행이 첫번째가 아니다. 그들은 연중 휴가동안「단순히 환자들을 돕기 위하여」순례지까지 동행하였고, 힘든 간호를 떠맡았다. 물론 이것은 자원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비, 페트라, 요아힘, 프란츠 그리고 그의 간호림의 다른 모든 남자들과 여자들 가운데서 나는 루르드의 징후를 보게 되었다. 그들의 봉사활동으로써 그 징후를 보여주는 이 순례는 금방 꺼지는 감격적인 일시적 흥분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영향을 주었고 변화시켜주는듯 했다.

■ 황홀ㆍ경건한 분위기

우리가 도착했을 때 루르드는 무수한 기념품 상점을 기웃거리는 여행자들과 함께 우리를 맞이했다. 좁은 골목을 자나서, 우리는 다같이 이 성지의 중심인 동굴 가까이 갔다. 미사를 봉헌한 성 비오 10세 성당에는 성찬식을 거행할때, 3만명에 가까운 순례자가 모였고 우리 순례단은 거의 할말을 잃었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성체행렬에 이끌려 로사리오 성당앞 광장으로 갔다. 우리는 곧 국제적이고 황홀하고 경건한 그 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이제야 정말 우리는 루르드에 도착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의 세계와, 각자의 리듬을 수반한 시간속에 잠기는 것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진지하게 읊는「성모송」「거룩하시다」와「호산나」의 환성이 밤낮없이 이 도시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루르드의 핵심은 병고와 고뇌를 지고 도처에서 순례를 온 환자들이다. 성스런 축복을 받고자 하는 그들을 위하여 매일 이 행렬이 거행된다.

아일랜드에서 온 순례단과 더불어 우리는 성체 행렬에 앞장을 설 수 있었다. 저마다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로사리오 성당앞으로 갔다. 성체가 행렬과 함께 입장하자 수천 명의 젊은이와 노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루르드에는 하느님을 받드는 겸손함만이 감돌았다.『주여, 저를 걷게 하소서』『주여, 저를 보게 하소서』『주여, 저를 듣게 하소서』이 환자들이 드리는 탄원의 기도가 영어, 불어, 이태리어, 독일어와 스페인어로, 그 광장에 울려퍼졌다.

휠체어에 앉은 젊은이, 어머니 품에 안긴 갓난 아기, 늙고 허약한 노인들, 작은 마차에 태워져 행렬에 서있는 두세 살 나이의 정신박약아들과 지체부자유아들이 바로 그 환자들이었다.

행렬 끝에 우리는 모두『위대하신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주님, 당신의 능력을 찬양하나이다』라고 노래하였다. 우리는 모두「아멘」으로「그렇게 되어지이다」의 말을 맺었다.

곤경과 고통 앞에서는 그 환호의 찬미가를 거의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순례객중 마리아라는 여인이 아주 단순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병으로 인해 몇번이고 절망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녀는『그러나』라고 하면서『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계신 분은 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는 물에 몸을 담그기 위해 마리아와 같이 갔다.

그곳은 낡은 콘크리트 벽을 한 수수한 건물이었다.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사이에 끼어 참을성 있게 줄을 섰다. 훨체어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우리는 침수장 앞에서 여러가지 노래와 기도를 하는 순례객들로 둘러싸였다. 그들은 루르드 샘물에 들어가는 것에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 대해 침수장책임자 마리 테레즈 로셰부에는『우린 그것에 관해 묻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그들의 병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성지까지 어느정도 바래다 주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여기 있는 겁니다』

1858년 성모발현이 있은 후부터 루르드에서는 의학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6천여 건의 치유가 일어났다. 그중 65건은 교회에 의해 기적으로 공식 승인되었다. 현재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루르드의 상주의사 로저 필론은 지난 해 루르드에서는 20여 건의 치유가 보고되었다고 대답하고 있다. 자세한 준비 끝에 그는 여섯가지의 기록서류를 한 국제기구에 보냈고 의사로서의 자신은 기적이란 알지못한다고 이전의 병원 책임자가 말했다. 그 의사는 다만 의학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자연적인 회복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는 어쨌든 이런 치유들을 하느님의 징표로 여기고 있고 그 자체로써 받아 들여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성지는 밤이 되었다. 가끔 동굴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미주쳤다. 그들은 성모상 밑의 돌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곳에서 성모님은 진짜로 생생하게 발현하셨다. 순례자인 헤트비히라는 여인에게는 이것이 루르드의 기적이었다. 그녀는 그 발현 이야기에 몰두했고, 방앗간과 벨라뎃따가 살던 침침한 감옥에서 성녀의 삶의 발자취를 찾았다. 성모님은 마사비엘의 동굴에서 그 작은 소녀에게 18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녀는『그것이 루르드의 특별한 점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여기 발현하셔서 우리들 중에, 바로 우리들 가운데서 한 소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 수백개의 촛불들

그 절벽의 동굴은 밤낮으로 타는 수백 개의 촛불 때문에 연기로 그을려 있었다. 곧 밤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성모님께 기도하기 위해 동굴로 찾아왔다. 그날 밤에 우리도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기 위해 동굴 건너편 자브강가의 풀밭에 모였다. 우리는 기도했다. 아니, 제라르 신부님으로부터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 프랑스 신부님의 말씀은 간단했다. 신부님은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우리에게 새롭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함께 바쳤다. 지체부자유아인 여섯살의 마르코, 복합경화증 환자인 알퐁소, 암환자인 베르타 등을 위해서였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간청했고 다같이 기도했다.

매일 오후에는 신부님이 순례자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기도를 바쳤다. 헤르만은 깊이 감동하면서『제9처에서, 예수께서 인간적인 비참함속에 세번째 쓰러지셨을 때, 그분은 완전히 지치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셨음을 알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주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나는 성령의 선물이 어떤 것인지 루르드에서 알았다. 온화함, 겸손, 경외심 이러한 모든 미덕을 나의 마음을 움직인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경험하였다』고 말했다.

루르드에서의 자유로운 기쁨은 그런 경험에서 생기는 것일까? 루르드는 즐거웠다. 이전에는 이렇게 완전히 갈등에서 놓여난 많은 사람들을 결코 만나본 적이 없었다. 모두들 침수장과 동굴과 행렬과 기도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들은 웃고 기뻐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밤중의 촛불행렬에서는 이러한 환희가 환호성 속에 퍼져나갔다. 우리의 거대한 촛불행렬은 로사리오 성당 앞으로 했진해 갔고,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하며 수없이 노래했다.

■ 기쁨의 눈물넘쳐

루르드의 분위기는 마음을 끌었고, 사람들을 그 매력으로 꼼짝못하게 묶어 놓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었다. 출발하기 전 날, 우리는 환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했다. 많은 이들이 병자성사를 받았다. 한 신부님은, 의학적으로 판단해서 병세가 전혀 바뀌지 않더라도, 그들을 구해주시고 일으켜 주시며 죄를 사해 주시고 회복하게 해주시도록 하느님께 매달리라고 격려했다. 하느님께서는 이 기름바름을 통하여 당신의 풍성한 자비로 도와주실 것이라고 신부님은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환자들의 체험을 함께 경험했고, 이것을 작은 손짓과 웃음과 악수로 알려주었다. 한 순례객은 병자 도유가 끝난 다음 자기 부인과 껴안고 울었다면서 말했다.

『루르드에서는 작은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아마도 우리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인가 봅니다. 잘 모르겠어요!』「병이 나았다」동굴에서 몇백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숲에는 동상이 하나 서있다. 그 동상은 한 소경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 동상의 대좌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그러한 믿음을 다시 본다기 보다는, 회복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느베르를 방문했고, 성녀 벨라뎃따의 석관 앞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우리가 순례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시 밤이었다. 루르드는 우리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새로운 믿음과 기도를 배웠고 자유로와졌으며, 우리의 눈물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