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신부님께서 헌금에 대해서 꼬집어 말씀하시기를 토요일 오후쯤해서 일요일이 되면 성당주변 시장에는 오백원권 지폐가 동이 난다고 해서 폭소(?)했던 일이 생각난다.
우리가 그냥 웃어 넘어가야할 일만은 아닌 것같았다. 헌금하는 돈이 많고 적고간에 정성이 담겨있지 않다는 점에서 깊이 반성해야 할 것만 같다. 이왕지사 동전보다는 지폐를 봉헌해야 뒷사람 보기에도 떳떳하고 체면유지가 되곤했다. 그나마도 요즈음은 5백원권 지폐는 자취를 감추고 이젠 체면상 천원짜리 신자가 되고 만것이다. 삼년전만 하더라도 천원권으로 담배 한 값 사고 거스름돈을 오백원권 지폐로 바꾸어서 헌금으로 내곤 했었다. 분명 이러한것은 내 자신이 생각해 보아도 여유가 있고 없고 라기 보다는 습관적이고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간혹 친구들과 만남이 있을때 고ㆍ스톱(화투)을 하다보면 아마 몇천원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때도 많았을줄 안다. 그러나 주일날 성당갈 준비를 준비를 하고 나설때면 벌써 현찰에 대해서 숙연해진다. 요긴한 돈과 하찮은 돈을 구분해서 그중에 하찮은 돈을 내곤했었다. 요근래의 일이지만 천원권을 봉헌한다는 것이 그만 잘못하여 오천원권을 내고는 마음속으로 애통해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가하면 어느 본당 할머님 신자분께서 푼푼이 모은 큰돈(?)을 예쁜 꽃주머니를 손수 만드셔서 정성스레 넣어 봉헌때 헌금으로 내셨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감명깊게 들은적이있다. 이것이 진정 과부의 동전 한닢이 아니겠는가? (마르꼬12장41-44) 내것만을 소중히 여기는 현실속에 이 어찌 우리가 할일을 한다고 하겠는가? 내가 꼭 필요로 하는 모든것을 드렸을때 필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일게다.
모든 월동준비 끝내놓고 구겨진 지폐 한장 들고 성당가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무드 잡아가며 외쳐댔을때 이미 주님이 계시지 않는 빈철제 십자가에 대고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일까도 생각해 보아야 할것같다. 주여! 진정 고통받는 형제들을 생각하게 하소서! 바로 당신께 해드리는 것이오니다! (마태오25장4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