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세기에는 별도의 전례복이 없어 성직자들도 깨끗한 평복을 입고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러다가 6~7세기의 게르만 민족 대이동 이후부터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고대 로마 복장이 전례복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8세기부터는 주요 전례복에 상징적 의미를 붙이고 해설을 곁들이기 시작하였다.
전례복은 여러 가지 기능과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특히 전례 주년과 축일 및 예식의 의미를 드러내고, 봉사자들의 고유 직무를 표시하며, 전례 행사를 성스럽고 고상하며 아름답고 성대하게 한다. 이러한 기능에 따라 전례복은 재료, 형태, 색깔 등이 전례 행사와 봉사자의 직무에 적합하며 고상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복음적인 단순성을 간직해야 한다. 주교회의는 토착화된 전례복을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지만 사전에 교황청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전례 거행에서 전례복을 입는 의미는 개인적인 특징을 덮어두고 교회의 공식 시종자로서의 예식을 거행함을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같이 직무의 다양성은 전례 중에 예복의 차이로서 외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전례복은 각 직책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오늘날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전례복은 예전보다 다소 줄어들어 장백의, 영대 및 제의가 기본 복장이다.
장백의
장백의는 고대 로마의 속옷 일종인 뚜니까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흰색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이 색이 빛이신 그리스도 또는 천국에서 신앙인들이 누릴 새 생명 등을 상징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여기에다 사제의 정결, 은총, 세례로 새로이 태어난 신앙인들의 거룩한 삶 등의 의미도 부여하고 있다. 이 옷은 단지 사제나 부제 등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전례 봉사자는 누구나 착용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전례복이다.
개두포
어깨에 두르는 개두포는 11~12세기경에 어깨에 두르는 일종의 장식용 전례 복장으로 도입되었다. 이제는 장백의가 평복의 목 부분을 가리지 못할 때에 사용한다.
띠
장백의 위에 허리를 매는 띠는 원래는 뚜니까 위에 매는 허리띠였다. 중세기에는 이 띠를 수난의 그리스도를 묶었던 끈, 그릇된 욕망의 억제, 깨어있음 등의 상징으로 해설하였다.
영대
영대의 기원은 아마도 고대 로마인들의 손수건이나 목도리였으리라 짐작된다. 4세기 이후에는 공직자들의 신분을 표시하는 복장이 되었는데, 그 영향으로 4~6세기에 성직자 복장이 되었다. 로마에서 영대가 전례 복장으로 일반화 된 것은 13세기부터이다. 현재는 성직자의 품위, 서품을 통해 받는 주님의 멍에 등을 상징하는 성직자의 기본 전례복이다. 영대를 착용할 때 사제는 영대를 목에 걸고 가슴 앞으로 내리며, 부제는 왼쪽 어깨에 걸치고 가슴과 등 뒤를 거쳐 허리 오른 쪽으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