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진단]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03-03-02 10:12:00 수정일 2003-03-02 10:12:00 발행일 2003-03-02 제 233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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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배려·안전망 절실하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질병과 빈곤에 시달려온 한 50대 남자의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와 재난에 대해 전혀 무방비 상태였던 대구 지하철이다. 그리고 그 배경은 고속 성장의 와중에서 투자의 효율성만을 내세울 뿐 인간의 안전과 존엄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총체적 안전 불감증의 심리 상태였던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더욱 근본적인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안전망의 부재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고 이러한 심리가 이번과 같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의 형태로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부와 권력의 향유에서 제외된 사회 계층이 우리 사회 안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이미 하나의 계층으로 형성돼 있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층이 점점 더 두터워지고 있는 반면 이들을 배려하는 사회보장책은 최저 수준이라는 데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진다.

이번 참사의 용의자인 김대한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하고 싶은데 혼자 죽는 것이 억울해 『다같이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행이 극복되지 않는 처지를 비관하고 그 고통을 사회 탓으로 돌림으로써 사회에 대한 보복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보도에서는 개인이 불행한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보장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뇌졸중-실업-장애-개인의 정체감 상실-사회 원망-정신적 공황-지하철 방화로 연결된 사회병리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개인의 고통과 소외감으로 인한 사회적 불만이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되는 사례가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 가까이는 지난 2월 11일 부산에서 지나가는 차량에 총격이 가해진 사건이나 1월 중순 서울시내 한 극장에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위협하고 폭발물을 소포로 보낸 사건 역시 같은 범주에 속한다. 90년대 초 여의도 광장을 질주해 어린이들을 희생시킨 한 불행한 청년의 사례 역시 이번 사건과 원인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방화의 경우에는 이같은 경향이 더욱 짙다. 특히 행정자치부 방호과가 97년부터 2001년까지 전국 방화사건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불만 해소를 위한 방화가 연평균 30% 증가를 보였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이에 대해 실직자나 장애인, 빈곤층 등 소외 계층이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낀 나머지 불행의 원인을 사회 탓으로 돌리고 불특정인을 상대로 자포자기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철저한 지하철 안전 대책을 세우고 시민들의 재난 대비 훈련을 실시하면 다음에는 사고 규모가 다소간 줄어들 것이다. 차량을 유독가스를 내뿜지 않는 불연성 소재로 다시 만들면 질식해서 사망하는 희생자의 수는 줄 것이다. 하지만 제2, 제3의 방화범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절망의 상태에 빠진 개인이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살피는 사회적인 안전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안전 대책에 있어서는 부분적인 사회복지 정책의 전환도 필요하지만 무한경쟁, 효율성과 성장 지상주의, 극도의 이기심을 넘어 소외계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