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전헌호 신부의 환경칼럼 (51) 우주의 환경 11 객관적-주관적 세계 2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03-02-09 11:14:00 수정일 2003-02-09 11:14:00 발행일 2003-02-09 제 233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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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 두고 잇으면, 내가 현재, 이 순간에 있으면, 나를 잃지 않게 되고 깊고 넓어진다
외부의 객관적 세계가 참으로 어떻게 생겼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세상은 모두 나의 오관과 사유를 거친 주관적 세계이다. 개는 개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지각하고, 소는 소대로 그렇게 하며, 모든 동?식물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생물의 각 종마다 고유한 세계를 갖도록 창조하셨고, 같은 종 안의 구성원들은 서로 공감대를 많이 갖도록 하여 의사소통과 공동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나에게 맛있는 것은 대체로 너에게도 맛있고, 네가 웃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나도 함께 웃는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협동도 하고 경쟁도 하면서 이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나의 고유한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명백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이 세상도 그 때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죽을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소멸되는 것이지만, 이 세상 역시 그 때 나에게서 소멸될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 공간과 150억 년이나 된다는 시간 역시 나에게는 나의 주관적 세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외부의 객관 세계를 조금씩 더 체험해 가면서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 이외에도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 간다. 그만큼 나의 주관적 세계가 커져 가는 것이다.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마다 이 주관적 세계는 넓어지며,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거나 정규 또는 비정규 교육을 받을 때마다 깊어져 간다. 여기에 공부의 큰 의미가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책을 보면 볼수록,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나의 주관적 세계는 넓어지고 깊어진다.

또한 마음의 문을 열고 외부세계를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주관적 세계는 풍부하고 깊어져 간다.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는 사람은 보고 또 보아도 아무 것도 본 것이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마음을 닫고 있는 바리사이인들은 듣고 또 들어도 보고 또 보아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마음이 열린 사람은 한 번만 듣고 보아도 금방 알아듣고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고 하셨다.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며 알려고 무척 노력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떠할 것이며, 부활이란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모르는 것이 엄청 많고, 알고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의 신비로서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그 누구도 아직 완전히 밝혀 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밝힐 수 없을 문제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나의 마음을 열어 두고 있으면, 내가 현재, 이 순간에 있으면, 나를 잃지 않게 되고 깊고 넓어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있는 사람, 마음을 청빈하게 가지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되고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더 묵상해 보자.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자는 마음을 완전히 비운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자.

현재, 이 순간 나에게는 나의 몸과 인식하는 의식이 있다. 이 몸이 튼튼하도록 관리하면서 의식세계를 열어 두면 열어 둘수록 나는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진다. 온갖 노력들로 지금까지 확보한 모든 지식과 체험 그리고 그 외 모든 것들은 나와 이웃의 삶에 매우 소중한 것이고 존중하여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지만, 완전한 것이 아니라 아직 과정 중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움켜쥐고 고집하여, 고정되고 굳어지면서 작아지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줏대가 있으면서도 유연해서, 서로 이해하며 갈등을 줄일 수 있어 좀 더 행복할 것이다.

전헌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