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완역한 이기상 교수

박영호 기자
입력일 1998-04-05 11:07:00 수정일 1998-04-05 11:07:00 발행일 1998-04-05 제 209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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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논리’서 벗어나자
“서구 합리성 한계 노출, 한국적 응답 모색할 때”
세기를 앞서 기술과 과학의 시대를 예감하고 그 기술과 과학이 인류에게 안겨줄 환희의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그림자를 간파한 하이데거.

그는 언제부터인가 과학의 논리가 삶을 지배함으로써 이러한 "과학 중심적 태도가 오직 과학을 통해 보는 시야만을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신적인 것을 내몰고 성스러움의 영역을 폐쇄한다" 고 지적한다.

최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이기상교수가 완역해낸 "존재와 시간 (Sein und Zeit)" 은 삶의 문법을 과학의 논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존재" 와 "시간" 의 관계에 주목한다.

"시간 속에서" 형성하는 존재의 생기, 존재의 사건을 보고 이 둘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사유하고 탐구한다. "존재와 시간"은 독일에서조차 난해한 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책.

"왜 독일어로 번역되지 않고 있느냐?" 하는 농이 오갈 정도로 읽기에 공이 들어가는 책이다. 그런 만큼 옮긴이가 이번 번역에 들인 공력이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교수가 하이데거를 처음 대면한 것이 지난 74년.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처음 강의를 들은 후 그의 "현존재 (Dasein)" 라는 개념에 매달리기 시작, 독일로 학교를 옮겨 하이데거의 사상을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후 4반세기 석사와 박사 논문을 모두 하이데거 철학에 관해 썼고 대학에서 하이데거 철학을 강의하면서 10여권의 하이데거 저서를 저술, 또는 번역했다.

이기상 교수는 "존재와 시간" 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존재와 시간" 용어 해설" 을 동시에 내놓았다. 전통 철학에 대한 철저한 비판 속에서 전혀 다른 개념 틀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는 그의 텍스트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한 줄도 제대로 따라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필생의 과업 중 하나를 이뤘다는 자부심에 이어 이제는 하이데거가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한 한국적 응답을 모색할 작정이다.

"서구적 합리성의 한계가 명확하게 노출된 지금 이제는 대안적 문화논리,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모색해야 합니다. 그것을 나름대로 "한국화" 라고 이름지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지향은 신학과 종교 영역에서 거론되는 "토착화" 와도 일정부분 공유점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토착화의 개념 역시 서구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우리의 묵은 옛 전통과 접목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향으로서 "한국화" 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