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선종] 장례미사 이모저모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23-01-10 수정일 2023-01-10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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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면서도 장대한 배웅…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지 안장
신자 6만여 명 가득 채운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
221년 만에 현직 교황 주례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CNS

일생을 하느님 말씀을 연구하고 진리와 교회 전통을 수호하고자 노력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지난해 마지막 날 선종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는 1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봉헌됐다. 6만여 명의 군중이 참례한 가운데 검소하지만 장대하게 봉헌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는 하느님 품으로 향하는 그의 마지막 지상 여정이었다.

1월 4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입관예절 중 교황전례원장 디에고 조반니 라벨리 몬시뇰(아래)과 개인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얼굴에 흰 천을 올려놓고 있다. CNS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개인비서 겐스바인 대주교가 장례미사 중 관에 입맞춤하고 있다. CNS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시신이 담긴 관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CNS

■ 현직 교황 주례한 교황 장례미사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는 1월 5일 오전 9시30분(로마 시각)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됐다. 역대 교황의 장례미사는 추기경단 단장이 집전해왔지만,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장례미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했고, 추기경단 단장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공동집전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2013년 건강을 이유로 교황직에서 물러났다. 후임 교황과 전임교황이 함께 살아있는 전례 없는 ‘두 교황’ 시대였기 때문에 현직 교황이 전임자의 장례미사를 주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802년에도 당시 현직이던 비오 7세 교황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임자였던 비오 6세 교황의 장례미사를 주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비오 6세 교황은 프랑스군에 납치돼 귀양살이를 하던 1799년 8월 프랑스에서 선종했다. 비오 6세의 장례미사는 당시 프랑스에서 거행됐고 시신도 프랑스에 안장됐다. 이후 3년 뒤 비오 6세의 유해를 교황청으로 다시 모셔오면서 1802년 다시 장례미사를 봉헌한 것이었다.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장례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추기경 125명, 주교 400여 명, 사제 3700여 명이 등록했다. 또 신자 6만여 명이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채웠다.

현직 교황이 선종하면 교황청은 각국에 공식 조문단을 초청하지만,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현직 교황이 아니기 때문에 모국인 독일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40여 년을 살았던 이탈리아에만 공식 초청장을 보냈다. 독일에서는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총리,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고향인 바바리아주 마르쿠스 죄더 주지사가, 이탈리에서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과 조지아 멜로니 총리가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가 대표로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장례미사 중 고인의 관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CNS

■ 20여만 명 조문

교황청 정원 내 교회의 어머니 수도원에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시신은 1월 2일 일반 조문을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수의는 2008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폐막미사 때 입었던 제의였다. 1월 2일부터 4일까지 20여만 명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찾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입관예식은 4일 밤 엄수됐다. 입관예식은 교황전례원 원장 디에고 조반니 라벨리 몬시뇰이 주례하고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개인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함께했다. 관은 측백나무의 일종인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넣어졌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관은 1월 5일 오전 오르간 소리와 종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성 베드로 광장으로 옮겨졌다. 장례미사는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고인의 유지에 따라 검소하게 봉헌됐다. 장례미사는 교황 선종에 준하게 치러졌지만, 현직 교황이 아닌 만큼 ‘로마교구의 기도’와 ‘동방 가톨릭교회의 기도’는 생략됐다.

장례미사 중 신자들이 ‘바로 시성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CNS

■ 성 요한 23세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묻혔던 자리 안장

장례미사 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됐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시신은 장례미사에서 사용한 사이프러스 관을 아연으로 만든 관에 넣고, 이를 다시 최종적으로 참나무 관에 넣는 등 삼중으로 밀봉됐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묘지는 성 요한 23세 교황과 전임자였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묻혔던 자리다.

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특별한 관계를 다시금 보여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재위 기간 동안 두 교황은 특별한 지적 우정을 나눴다. 198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당시 뮌헨-프라이징교구장이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교황청 신앙교리성(현 신앙교리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발표한 여러 문헌의 초안을 작성하는 등 그의 교황직 수행에 신학적 뒷받침이 돼 줬다.

2005년 4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자주 전임자의 묘지를 찾아가 기도했다. 선종 한 달 뒤인 2005년 5월 9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시복을 추진했고, 2011년 그를 시복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묘지는 시복 작업을 위해 발굴됐으며, 이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자신이 그 자리에 안장되길 바랐다. 이로써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나눴던 우정의 끈을 사후에도 이어가게 됐다.

레 추기경이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묘지에 안장된 관 위에 성수를 뿌리고 있다. CNS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