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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46) 증거자로서는 처음으로 가경자로 선포된 최양업 신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11-29 수정일 2022-11-29 발행일 2022-12-04 제 332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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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 행적에 드러난 영웅적 성덕 인정 받아
최양업 신부 전기 간행 사업에서 출발
교회 법정 개정에 대한 시성부 인준 후
기적 심사 비롯한 교구 심사에 가속도
교황청에 시복 청원 접수되며 심사 시작
2016년 ‘영웅적 성덕’에 대해 최종 승인 

2014년 8월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포지시오 제출을 앞두고 장봉훈 주교(뒷줄 오른쪽), 교황청 시성성 시복 안건 보고관 키야스 신부(앞줄 오른쪽) 등이 배티성지 내 복원된 배티 신학교에서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청하며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2016년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황청 시성부 교령을 승인했다. 최양업 신부가 한국교회가 추진하는 시복시성 대상자 중 증거자로서는 첫 가경자가 된 것이다. ‘가경자’란 교황청 시성부의 시복심사에서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최양업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155년 만에 세계교회는 그를 복자 위(位)에 올려 공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 최양업 신부 알리기 위한 청주교구의 노력, 시복시성 추진으로 이어져

최양업 신부 시복추진은 1990년대 초반, 청주교구 배티성지에서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을 간행하면서 시작됐다. 자료집 간행 목적이 처음부터 시복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전승으로 내려오는 최양업 신부와 배티 교우촌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최양업 신부의 삶과 신앙을 알린다는 목적으로 제반 자료들을 정리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에만 해도 최양업 신부는 성 김대건 신부, 한국 103위 성인과 순교 선조들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자료 정리 작업은 1995년 당시 배티성지 초대 담임이었던 장봉훈(가브리엘) 주교가 한국교회사연구소를 방문해 자료집 편찬을 협의한 데서 시작됐다. 같은 해 4월 15일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간행 계획이 수립됐고 그 후 2년 동안의 작업을 거쳐 「최양업 신부의 서한」,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증언록과 교회사 자료」, 「기해 병오박해 순교자들의 행적」 등 4권의 자료집이 세상에 나왔다.

서한 판독과 번역 작업을 하던 연구자들은 이 자료들이 예비 심사 과정에서 중요한 시복 자료집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했고 전기 자료집 편찬 간행 사업은 자연스럽게 시복 추진을 위한 자료 수집 정리 작업으로 변경됐다. 일부에서는 최양업 신부가 순교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복 추진에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고(故) 최석우(안드레아) 몬시뇰은 “최양업 신부가 순교자는 아니지만 증거자, 즉 영웅적 덕행을 남긴 사람으로서 시복이 추진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1997년 4월 전기 자료집을 완간한 배티성지에서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 청원서’를 작성해 당시 청주교구장이었던 고(故) 정진석(니콜라오) 추기경에게 제출했다. 정 추기경은 1997년 9월 20일 이 시복 청원서와 전기 자료집 4권을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하도록 인준하는 동시에 시복시성추진위원회 구성과 영성센터 건립, 최양업 신부 장학회 설립 등을 수락했다.

■ 시복 청구인 주교회의로 변경, 최양업 신부 시복 노력 박차

1998년 10월 12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각 교구 담당 사제들로 구성된 시복시성통합추진위원회를 출범토록 했다. 그 결과 서울·수원·원주·대구·청주·안동·부산·마산·전주·제주 등 10개 교구 담당 사제들로 구성된 통합추진위원회 회의가 1999년 1월 28일 처음 열렸고, 2001년 3월 22일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시복 청구인을 ‘주교회의’로 변경했다. 같은 해 10월 주교회의는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이하 시복시성특위)를 구성했고 시복시성특위는 2003년 11월 11일 교황청 시성부에 「최양업 신부의 약전에 첨부된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 시성 안건에 대한 관할권 즉 교회 법정 개정에 대한 교령」과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신청했다. 그러자 시성부에서는 2003년 1월 10일 장관 호세 사라이바 마르틴 추기경 명의로 관할권 신청에 대한 승인 즉 교회 법정의 권한에 관한 교령을 인준하고 1월 31일자로 최양업 신부의 시복 안건 추진에 아무런 ‘장애 없음’을 공문으로 승인했다. 이로써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법정 개정, 즉 교구 재판을 공식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시성부의 인준 이후 교구 심사에는 속도가 붙었다. 시복시성특위는 2007년 2월 6일 열린 회의에서 기적 심사와 관련해 주교회의에 상정한 현안들을 협의했고, 4월 15일 발표한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적 심사에 즈음하여」라는 담화문을 통해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사적지를 순례하고 기도하길 당부할 뿐 아니라 기적의 은혜를 받은 이들의 연락을 요청했다.

또한 2008년 5월, 시복시성특위는 3박4일 동안 최양업 신부의 시복과 관련돼 있는 탄생지를 비롯해 사목지·선종지·묘소 등에 대한 현장 조사 즉 공적 경배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최양업 신부의 교황청 심사 절차는 2009년 5월 28일 시복시성특위의 시복 청원서가 교황청 시성부에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2014년 11월 18일에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과 관련된 포지시오(Positio·보고관이 작성하는 심문 요항)가 시성부 역사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고 이듬해 12월 15일에는 시성부 신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최양업 신부의 행적에서 드러나는 영웅적인 성덕이 교황청의 역사학자와 신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이후 2016년 3월 14일 영웅적인 성덕에 대한 최종 심의가 통과되면서 4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시성부 교령을 승인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