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다시 태어난 삶 의미 있게” 지팡이 나누는 할아버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4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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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국제성지 지팡이 기부 류인협씨
 부상 당하고 큰 수술 겪으며
 몸 불편한 분 돕기 위해 시작
 150개 기부하고도 계속 제작
“죽기 전까지 열심히 나눌 것”

지팡이를 만들어 성지에 기증한 류인협 할아버지는 “의미 있는 일을 하라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지팡이를 만들어 나누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큰 사고를 당하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하느님이 저를 살려주신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했죠.”

대전교구 해미국제성지(전담 한광석 마리아 요셉 신부)에는 특별한 기증품이 있다. 신자가 손수 만든 지팡이다.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하진 않지만 순례객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이 물건은 해미본당 신자 류인협(요한 세례자·81) 할아버지가 기증한 것이다.

성지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류 할아버지의 집. 작은 마당 한켠에는 나무 막대가 가득 걸려있다.

“나무도 해오고, 완성된 지팡이도 보내야 하는데 전동 휠체어가 제구실을 못해 걱정입니다.”

요 며칠 지팡이를 만들 나무를 구하지 못했다는 류 할아버지의 표정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오전에 공공근로를 하고 돌아오면 오후에는 지팡이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는 류 할아버지. 고령에다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지팡이 만드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4년 전쯤, 해미읍성의 풀을 뽑는 공공근로를 하다가 7m 높이에서 떨어져 대퇴부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큰 수술을 겨우 마치고 퇴원은 할 수 있게 됐지만 낮은 계단조차 내려오기 어려운 몸이 됐죠.”

지팡이를 짚고 어렵게 걸음을 내딛으며 몸이 불편한 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 류 할아버지는 걷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팡이를 만들어서 나눠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목수 일을 오래 했던 그가 잘하는 일이 나무를 다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류인협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지팡이들.

지난해 3월부터 만들기 시작한 지팡이는 어느새 200개가 넘었다. 류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 번, 산에서 나무를 구해와 다듬고 말려 지팡이를 만든다. 키가 작은 사람을 생각해 길이도 달리하고, 잡기 편하도록 손잡이 만드는 과정에도 정성을 들인다. 몸은 고되지만 지팡이를 만들면서 마음속 기쁨은 커져갔다.

“하느님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신 것은 뜻있는 일을 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나누며 하느님이 다시 주신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해미국제성지에 기증한 지팡이는 150여 개. 지팡이를 성지로 보낸 것은 지팡이가 좀 더 의미 있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제가 주면 한낱 나무깽이로 보이겠지만 신부님이 주시면 보물로 보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신부님께 나눠주라고 한 것이죠.”

해미국제성지에 온 신자들이 하느님께 감사하고, 누군가가 내어준 지팡이를 보고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류 할아버지는 오늘도 지팡이를 만든다.

1년 넘게 지팡이를 만들고 있는 류 할아버지에게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이제는 좀 더 실용적이고 예쁜 지팡이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죽기 전까지 열심히 지팡이를 만들어 나눌 것입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