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훌륭한 사도가 될 거라 믿었던 김기량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은 1816년 제주 섬 함덕리(현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배를 타고 장사를 했던 그를 사람들은 ‘김 선달’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1857년 2월 18일 동료들과 함께 무역을 하려고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한 김기량. 동료들이 죽고 홀로 살아남은 그는 중국 광동 해역에서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된다.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보내진 그는 그곳에서 조선인 신학생 이만돌(바울리노)을 만난다. 이만돌에게 교리를 배우고 1857년 5월 31일 루세이유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그는 조선에 귀국해서 신앙생활을 이어간다. 조선에서 그는 가족과 그의 사공들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육지로 나와 교구장인 베르뇌 주교에게 성사를 받기도 했다.
베르뇌 주교는 1858년 8월 14일자 서한에서 김기량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새 신자는 제주도 사람인데 총명하고 신앙이 발랄합니다. 집안이 40명 가량 되는데 그는 그들이 모두 개종할 것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제주도 복음화를 위한 김기량의 노력은 1866년 병인박해의 기세에 꺾이고 만다. 무역을 하려 경상도 통영에 간 그는 게섬(현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됐고, 1867년 1월 51세의 나이로 순교한다.
모진 문초와 형벌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그는 함께 갇힌 교우들에게 “나는 순교를 각오하였으니, 그대들도 마음을 변치 말고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권면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