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안동교구 문경본당 "다시 찾는 성당” 시골 어르신들 쌈짓돈이 일군 기적

이나영 기자
입력일 2022-07-12 수정일 2022-07-13 발행일 2022-07-17 제 330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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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 ‘은총의 빛 십자가’ 설치
낡은 계단 비롯해 곳곳 보수
지역민·순례객들에 ‘문 활짝’

7월 6일 문경본당 주임 김한모 신부(가운데)와 신자들이 성당 마당에서 외관 정비를 기념해 사진을 찍고 있다.

‘한 번 더 오고 싶은 성당을 만들자.’

안동교구 문경본당(주임 김한모 바오로 신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64년 된 시골 본당이자, 60대 이상 신자가 70%를 넘는 본당에서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 그럼에도 신자들은 마음을 모았다. 주임 김한모 신부의 말처럼 ‘한 번 더 오고 싶은 성당’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은 것이다.

2020년 본당에 부임한 김 신부는 구석구석 낡은 곳을 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고령의 신자들과 함께 공사를 진행할 엄두가 나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변화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우연한 기회로 문경성당을 찾은 조각가 한진섭(요셉)씨가 우뚝 서 있는 종탑 위 십자가 재설치를 제안했다. 높은 건물이 없는 지역 특성상 종탑 위에 조명이 있는 십자가를 두면 주변 어디서든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6000여 개의 성체를 형상화한 스테인리스 십자가를 제작해 성당에 봉헌했다. 낮에는 은색으로 반짝이고, 밤이 되면 은은한 금색으로 빛나도록 설계한 작품. 종탑 위 십자가는 ‘은총의 빛 십자가’라 이름 붙여지며 지역의 ‘등대’가 됐다.

김 신부는 “캄캄한 밤에 멀리서도 종탑 위의 십자가가 은은하게 보이는데,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마을 ‘이정표’가 생겼다고 좋아한다”고 전했다.

십자가 설치 후 신자들의 자부심은 커졌다. ‘우리 성당’을 더 예쁘게 꾸미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올 4월에는 낡은 계단과 화단, 담을 석재로 바꾸고, 성당 마룻바닥도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는 형태로 수리했다. 5~6월 성당 공사를 위해 실시한 모금에는 단 두 달 만에 4000여 만 원이 모였다. 주일헌금이 50만 원 남짓인 시골 본당에서는 예상치도 못한 큰 액수였다.

문경성당 종탑 위에 설치된 ‘은총의 빛 십자가’. 사진은 2021년 10월 거행된 십자가 축복식.

본당 사목회 총무 이상범(요셉)씨는 “처음 모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1000만 원도 모으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었다”면서 “멀리 시골에 사는 할머니들이 쌈짓돈을 모아 주며 ‘우리 성당 예쁘게 하는데 보태라’고 하시는데, 공동체를 향한 진심을 깊게 느꼈다”고 전했다.

문경본당은 진안리성지, 마원성지와 3㎞ 내외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엔 한 해에 1만여 명 가까이 성지순례를 왔을만큼 전국 순례객들이 찾는 곳. 안동교구에서 운영 중인 ‘사제와 함께하는 도보순례’(담당 정도영 베드로 신부)의 무료숙박 또한 성당 내 교육관을 이용한다. 여름 휴가철과 맞물려 외관 정비를 마친 본당은 예전처럼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고, 본당을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다.

김 신부는 “성당 재단장은 본당 신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서 “예쁘게 꾸며진 성당을 보고 지역민들도 호감을 갖고,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에게도 아름다운 곳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나영 기자 la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