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세월호 참사 8주기 앞두고 만난 유가족 오홍진씨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4-06 수정일 2022-04-06 발행일 2022-04-10 제 3289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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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흡한 안전망… 끝나지 않은 참사”
참사의 진실 찾고자 매달린 8년 
타인의 아픔 돌아보며 슬픔 추스려
“진상 규명에 관심 가져주셨으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오홍진씨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엄마 아빠가 세상의 힘든 것들 다 짊어지고 갈 테니 너는 하늘에서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지내라, 준영아.”

채 피지도 못한 채 열여덟에 세상을 떠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당부.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오홍진(안셀모·61·수원교구 와동본당)씨는 하늘에서는 부디 아들이 좋은 것만 생각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씨의 아들 오준영(스테파노)군은 야구를 잘하고 체격도 좋았다. 든든한 장남이자 가족을 살뜰히 챙겼던 오군은 2014년 4월 15일 “잘 갔다 올게, 걱정하지 말라”고 집을 나섰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전날 야간근무를 해서 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굉장히 신나하며 집을 나섰다는 말만 아이 엄마에게 전해들었죠. 그날 오전에 아이가 탄 배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이 엄마에게 ‘진도에 가서 준영이를 데려올 테니 당신은 집에서 따뜻한 밥을 해놓고 기다리라’고 말했죠. 그런데 결국 집에 함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4월 23일 아들은 차가운 주검이 돼 부모님 곁에 왔다. 그날은 준영이의 생일이었다. 바쁘게 오가는 관계자와 기자들, 유가족의 울부짖음, 때때로 고성이 오가는 당시의 상황을 오씨는 몇 년간 기억하지 못했다. 오씨는 “악몽 같은 순간이었기에 머릿속에서 당시의 시간을 지워버렸던 것 같다”며 “이제야 퍼즐 맞춰지듯 그때 있었던 사람들, 상황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아들을 잃은 뒤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앉아있는 것도 오씨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단식을 했고 인천에서 팽목항까지 며칠을 걸었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8년을 버텼고, 함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부모라면 내 아이를 왜 그렇게 보냈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에 악착같이 진실을 찾고자 매달렸던 것이죠.”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직무감사인 오씨는 8년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찾는데 힘을 쏟았다. 오씨는 자신의 슬픔을 추스르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봤고,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아들을 떠나보낸 지 8년이 된 지금 “아들을 통해 전보다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4월은 오씨가 가장 바쁜 달이다. 목포 신항만에 있는 세월호 선체 탐방객에게 참사에 대해 설명하는 일뿐 아니라 진도군 참사해역에서 열리는 선상추모식, 서울에서 열리는 국민대회도 함께한다. 아들에게 덜 부끄럽고 싶다는 생각에서 더욱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오씨. 그는 “여전히 사회안전망에 대한 교육이나 시스템이 미흡하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며 “많은 분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