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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 (13)멍에목성지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3-29 수정일 2022-03-29 발행일 2022-04-03 제 328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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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꿋꿋하게 하느님 섬겼던 신앙의 터전

사람들 발길 닿기 어려운 구병산 기슭
박해 위협 잠잠해진 뒤 모여 살았지만
포졸들에게 급습 당해 연달아 순교
모든 것 잃은 상황에도 섭리 생각하는
교우촌 신자들 깊은 신심에 대해 언급

멍에목성지 전경. 구병산 자락에 위치한 멍에목성지에는 신앙선조들의 참 신앙과 믿음살이가 배어 있다.

“우리는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좋으신 하느님께 항상 의탁하며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안배를 칭송할 뿐입니다.”

충청북도 보은 구병산 기슭 깊숙한 곳에 위치한 멍에목. 이곳에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신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을 생각했다. 최양업은 여덟 번째 서한에서 멍에목 교우촌 신자들의 깊은 신심에 대해 언급한다. 깊은 산중에서 교리공부와 기도에 집중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멍에목 교우촌 신자들의 삶은 비신자들의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추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신앙선조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멍에목성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의 뿌리를 찾아본다.

■ 멍에목 교우촌에서 피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

교회사 기록에 멍에목이 나타나는 것은 1827년 정해박해 때다. 이 박해 때 체포된 보은 멍에목에 살던 복자 박경화(바오로)와 복자 박사의(안드레아) 부자는 혹독한 형벌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했다. 아버지 박경화는 1827년 옥사했고 박사의는 1839년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이들은 2014년 시복됐다.

박해의 위협이 잠잠해진 뒤, 신자들은 다시 멍에목에 모여 살았다. 하지만 1866년 일어난 병인박해는 깊은 산기슭에 살았던 멍에목 교우촌 신자들에게도 칼날을 들이밀었다.

1867년 10월에는 청주 포교들이 금봉(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월용리) 마을을 습격해 멍에목 교우촌 회장 최용운(암브로시오)의 처남인 전 야고보를 체포했다. 이어 다음해에는 서울 포교들이 멍에목 교우촌을 급습해 여 요한과 최조이 부부, 안 루카, 여규신, 최운흥 등을 체포했다. 이후 상주 장재동(현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에 피신해 있던 최용운 회장마저 체포됐다.

포교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전 야고보를 석방해 주려 했지만, 전 야고보는 “제가 비록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한결같이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고 있다”라며 신앙을 증거했고 1867년 순교했다. 이후 1868년에는 최용운 회장이 갖은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교우들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권면하면서 신앙을 굳게 지키고 함께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최 회장과 전 야고보는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순교한 사실이 기록된 유일한 하느님의 종이다.

1868년 울산에서 순교한 복자 김종륜(루카)도 박해가 일어나자 공주에서 멍에목에 피신해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멍에목성지의 성모상.

■ 깊은 산중에서 하느님과 더욱 가깝게 만났을 멍에목 신자들

구병산 자락은 충북의 알프스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산세가 수려한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려웠던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6·25전쟁 당시 전쟁이 일어난 지도 모를 정도였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에 자리한 멍에목성지는 보은읍에서 20㎞ 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가기에도 험난한 길을 200여 년 전 신앙선조들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 하나만으로 몇 날 며칠을 걸어 이 마을에 도착했다.

멍에목은 구병리의 윗멍에목과 삼가리의 아래멍에목으로 나뉜다. 19세기에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은 윗멍에목으로, 교회는 1800년대에 신자들이 교우촌을 일구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구병 아름마을로 조성된 이곳은 가을이면 메밀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다. 한국의 3대 풍혈 가운데 하나인 구병산풍혈을 감상할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멍에목성지 뒤편은 구병산 자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름마을 중턱에 위치한 성지는 마치 하느님의 품 안에 있듯 안락하고 평화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고요한 가운데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 자연의 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신자들은 기도에 열중하며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청주교구는 2016년 8월 12일 멍에목 교우촌의 교회사적 의미를 반영해 성지로 지정하고 담당 신부를 임명했다. 마을회관을 고쳐 지은 성당은 화~일요일 오전 11시에 미사가 봉헌된다. 작은 규모지만 10명 남짓한 신자들이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자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성당 뒤로 난 숲길을 따라 걸으면 교우촌이 있었던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아직 개발 중인 이곳은 빈터에 세워진 십자가와 예수상이 전부지만 깊은 산중에서 외롭지만 꿋꿋하게 하느님을 섬겼던 신앙선조들의 삶을 짐작하기 충분하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