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제5대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임명] 삶과 신앙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2-03-02 수정일 2022-03-02 발행일 2022-03-06 제 3284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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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발전과 교구민 신앙 성숙 위해 헌신해 온 목자

 2009년 보좌주교로 임명
 교구장 유흥식 대주교 로마행에
 2021년 7월부터 교구장좌 직분 수행
“어떤 역할 맡든 사제는 사제일 뿐”

2009년 대전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김종수 주교는 교구민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왼쪽 사진부터) 2016년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갈매못성지 순교자 현양미사. 2019년 ‘사랑의 김장담그기’ 행사. 2021년 해미국제성지 교령 전달식에서의 김종수 주교.

“나 자신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줄줄 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제5대 대전교구장으로 임명된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지난 2009년 2월 보좌주교로 임명된 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주교 직분의 중압감이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김 주교는 “교회를 위한 선택이니 주어진 소임에 온전히 봉헌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소감을 묻는데 소명을 이야기했다.

그의 교구장 임명 소식이 공표된 것은 2월 26일 오후 8시 대전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였다. 7시 미사를 막 끝낸 시간이다. 김 주교의 이마에 전처럼 ‘땀이 줄줄’ 흐르진 않았다. 이미 소명에 충실한 주교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제와 신자들의 박수 속에서 김 주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말을 건넸다. 김 주교는 “제가 원래 강론을 길게 안 하는데, 엠바고(보도 유예) 때문에 시간을 맞추느라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애 먹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고 기도를 청했다. 그리고 “사제는 항상 사제일 뿐”이라며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사제로서의 삶을 계속 살 것을 다짐했다.

공부벌레이던 학자 주교

김 주교는 대전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대흥동성당을 뛰어다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했다. 김 주교는 어려서부터 학업에 남다른 재능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가 이처럼 학업에 탁월한 성과를 보였던 것은 재능보다는 열심한 노력에 기인했다. “밤이 됐으니 잠을 자는 것이지 밤이 없으면 계속 책을 읽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학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몸에 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하던 시기는 김 주교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때다. 성경 공부에서 말씀에 흠뻑 젖는 체험을 한 후 군 제대 직후인 1984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 사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9년 2월 13일 사제가 된다.

사제품을 받은 후에도 김 주교는 학업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하기 위해 1990년 로마로 유학을 떠나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신학을 공부했다. 유학시절에도 이어진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에 주위의 다른 유학생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이미 그런 공부가 몸에 밴 김 주교에게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따뜻한 스승이자 목자

김 주교는 1994년 귀국 후 대전가톨릭대 교수와 교리신학원 원장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대전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했다. 신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던 그는 학문적 성과를 많은 저술 활동을 통해 공유하기도 했다.

확고한 신앙과 열정적인 학문 연구에 더해 온후한 성품으로 김 주교는 신학생들에게는 따뜻한 스승이었고 신자들에게는 자상한 목자였다. 항상 제자들에게 문을 열어두고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손수 차를 내려 대접하는 자상함, 사랑과 신뢰를 담아 사람을 대하는 성품은 그를 아는 이들의 감사와 존경으로 쌓였다.

김 주교의 서품 동기인 곽승룡(비오) 신부는 2009년 김 주교의 보좌주교 임명 당시 축하인사를 통해 김 주교는 “늘 따뜻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분”이라고 밝혔다. 김 주교의 이러한 성품은 모두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곽 신부는 “김 주교의 따뜻함은 아마도 7남매 가족들의 사랑에서 나왔을 것”이라면서 “하느님 말씀에 푹 젖어서 사제가 되어 그 사랑의 끈을 하느님 말씀으로 늘리셨다”고 말했다.

봉사하는 착한 목자

김종수 주교는 2009년 2월 대전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돼 3월 주교품을 받는다. 당시 김 주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보좌’라는 말을 9번 말했다. 자신의 소임과 위치에 충실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보좌’라는 말은 곧 ‘봉헌’의 의미였다. 당시 대전교구장 유흥식(라자로) 주교는 담화에서 김 주교에 대해 “학문과 지혜는 물론 교회를 위해 봉사할 준비가 넉넉히 된 착한 목자”라고 말했다.

김 주교는 그 후 12년 동안 교구 총대리, 수도회 담당 교구장 대리로서 교구민들의 신앙 성숙과 교구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특히 2014년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와 제3회 한국청년대회, 그리고 그에 맞춰 한국을 찾아온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행사들을 훌륭하게 치러내는데 기여했다.

김 주교는 특히 대전교구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개최한 교구 시노드를 교구 시노드 본회의 중앙위원장으로서 이끌었다. 시대의 표징에 주목하고 교구의 신앙과 사목 쇄신을 위해 개최된 교구 시노드는 시노드적인 교회를 찾아가는 발걸음이었고, 김 주교는 교구장을 도와 그 여정을 함께했다.

김 주교는 2021년 7월부터는 유흥식 대주교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됨에 따라 대전교구장 서리로 교구장좌 직분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와중에서도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등 교구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김 주교가 사제 서품 때 선택한 성구는 갈라티아서 2장 20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다. 이 성구에는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려는 항구한 마음이 담겨 있다.

① 김종수 주교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모습. ② 김종수 주교(왼쪽 두 번째)는 공군 학사장교 복무 중 사제성소의 꿈을 갖게 됐다. ③ 1989년 사제 서품식. ④ 2009년 주교 서품식을 마치고 김종수 주교가 강복을 하고 있다.

[약력]

1956년 2월 8일 충남 대전 출생

1978년 2월 서울대학교 졸업(국사학과)

1982년 3월-1984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정(국사학)

1984년 3월-1989년 2월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신학석사)

1989년 2월 13일 사제 서품

1989년 2월-1990년 3월 대전교구 논산 부창동성당 보좌신부

1990년 4월-1994년 7월 교황청 성서대학(성서학 석사)

1994년 8월-1997년 1월 대전교구 해미성당 주임신부

1997년 1월-2001년 2월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학생처장

2001년 2월-2007년 대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교리신학원 원장

2007년 6월-2009년 3월 대전 가톨릭대학교 총장

2009년 2월 10일 대전교구 보좌주교 임명(수파사르 명의 주교)

2009년 3월 25일 주교 서품

2009년 10월-2010년 3월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임명

2009년 10월-2018년 3월 주교회의 선교사목주교위원회 위원

2010년 3월-2018년 3월 주교회의 전례위윈회 위원장 임명

2010년 3월-2021년 10월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위원

2018년 3월-2021년 10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임명

2021년 7월-현재 대전교구장 서리 임명

2021년 7월-현재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

2021년 7월-현재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

2021년 10월-현재 주교회의 서기 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상임이사

2021년 10월-현재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담당 주교

2021년 10월-현재 주교회의 엠마오 연수원 담당 주교

2022년 2월 26일 대전교구장 임명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