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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신심행위, 어떻게 분별할까?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2-02-15 수정일 2022-02-16 발행일 2022-02-20 제 3282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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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실체만 좇으려다 거짓 신심에 현혹될 수 있어
어려움에 부딪히면
즉각적인 답변에 솔깃
심리적으로 위축된 이들
허점 공략한 사례 대부분

영성도 욕구 채우는
상품으로 인식하는 추세
신앙 점검 꾸준히 해야 
개인 맞춤형 사목도 필요

병의 치유나 기적적인 현상에만 집착해 성모발현의 메시지만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신심을 해칠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그릇된 신심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인준한 신심단체에서 활동해야 한다. 사진은 2019년 10월 13일 포르투갈 현지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파티마 성모 발현 102주년 기념미사를 주례하는 모습 . 파티마성지 제공

청주교구장 장봉훈(가브리엘) 주교는 2월 4일 공문을 통해 잘못된 신심행위를 조장하는 단체 및 기도모임의 활동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교구 안에서 모임을 하던 한 단체가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성모신심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및 각 교구는 정통 교리를 바탕으로 인준한 신심단체에서 활동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인준 여부를 확인하지 않거나 기도모임이라는 이유로 의심 없이 이러한 단체에서 활동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코로나19로 신앙공동체의 끈이 느슨해지면서 잘못된 신심이나 사적계시에 신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나주 율리아부터 베이사이드, 평화의 기도회까지… 그릇된 신심 확산

장봉훈 주교가 최근 활동과 모임을 불허한 ‘평화의 기도회’는 스스로를 메주고레 성모발현과 그 메시지를 따르는 신심단체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대교구에서 청주교구로 전파된 이 단체는 성모신심을 바탕으로 기도한다는 명목으로 교구 사제에게 지도신부가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원들과 만난 이 신부는 기도회 활동이 올바른 성모신심에서 벗어난 것으로 판단, 교구 선교사목국을 통해 확인을 요청했다.

그 결과 청주교구는 평화의 기도회가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메주고레 성모발현과 그 메시지를 따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인준하지 않은 단체임을 확인, 활동과 모임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지난 2019년 메주고레를 공식 순례지로 인정했지만 성모발현은 인정하고 있지 않다.

청주교구 총대리 성완해(안토니오) 신부는 “단체 활동을 고려할 때, 정통 교리 안에서 검토를 거친 인준단체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주변에 그릇된 신심행위를 한다고 의심되는 단체나 모임이 있다면 반드시 사목자와 상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모신심을 내세워 거짓된 신심을 전파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모상이 피눈물을 흘렸다는 나주 성모 발현 사건은 ‘미사 중 입 속의 성체가 피와 살로 변했다’는 윤 율리아의 주장으로 사적계시의 절정을 이뤘다. 교회 전문가들은 잘못된 성모신심이 잘못된 성체신심과 예수신심으로 나아갔고 유사종교의 형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30여 년 전 촉발된 이 문제는 여전히 봉합되지 않고 있다. 광주대교구는 지난해 3월 공문을 통해 “최근 나주 윤 율리아와 그 추종자들이 ‘마리아의 구원방주회’라는 이름으로 낙태 합법화 추진을 반대하는 천주교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면서 거짓 홍보에 주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에서 들어온 베이사이드(일명 미카엘회)도 수도권 교구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한 여성은 1970년부터 1992년까지 성모님께서 자신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 “성자의 몸인 성체를 손으로 받아 영하지 말아라,” “성자를 깨물지 말아라. 너희는 성자를 모욕해서는 안된다”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주장했다. 이 메시지를 근거로 ‘무릎을 꿇고 입으로만 성체를 영해야 한다’는 그릇된 신심을 전파했고, 이 운동이 한국에 들어온 1980년대 당시 미국 브루클린 교구를 통해 이 운동이 신빙성이 없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베이사이드의 그릇된 신심은 현재까지 한국교회 안에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2월, 수원교구는 베이사이드와 관련된 비가톨릭적 신심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 교회, 신자 맞춤형 사목 위해 노력해야

그릇된 성모신심이 확산된 역사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병의 치유나 기적적인 현상에만 집착해 성모발현의 메시지만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착각하는 경우가 줄곧 있어왔던 것이다. 이에 교회는 천주모친, 평생동정, 무염시태, 성모승천 등 성모님에 대한 4대 믿을 교의를 선포, 올바른 성모공경의 길을 제시했다. 교회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자들이 그릇된 성모신심이나 사적계시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 신부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종교를 찾게 되고 특히 지금의 고난을 타개할 수 있는 즉각적인 답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며 “나주 지역에서 확산된 성모발현의 기적 등 그릇된 성모신심을 전파하는 단체들은 치유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는 이들의 허점을 공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오는 고통과 시련,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성모님이 직접 메시지를 전하고 사적계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은총이 기쁨이자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형태가 변하면서 종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개인의 욕구가 달라진 점도 다른 요인이다. 한 신부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면서 영성도 개인의 욕구를 채워주는 상품으로 인식하는 추세로 변했다”며 “교회가 전해야 할 가치들은 변하지 않아야겠지만 개인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사목할 지에 대해서는 시대변화에 맞춰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 문제가 제기된 평화의기도회가 열심한 신자의 참여가 높았다는 점은 교회가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공동체 활동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한 신부는 “교회의 사목방식에 있어서 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맞춤형으로 바뀌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 의심치 말아야

그릇된 신심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물론이고 신자 개개인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교황은 인간적 나약함, 자기도취, 안주하려는 이기심, 탐욕으로 신앙이 위협받는 역사가 있었음을 언급하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신앙을 지켜내는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성인들을 본받도록 도와주는 동인은 ‘예수님의 사랑과 갖는 인격적 만남,’ ‘한 백성이 되는 영적 기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확신’ 등이다. 성사와 전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나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현존하심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릇된 신심으로 이끄는 유혹을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때론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직접적이고 확실해 보이는 실체를 좇게 되고 거짓된 신심에 쉽게 현혹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을 통해 “선교 열정이 늘 살아 있으려면 성령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께 간청해야 한다”(280항 참조)고 밝히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