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가까이 산마루에서 천상 행복을 염원하다 해발 579m 성거산 정상 부근 신유박해 피해 형성된 교우촌 120년 동안 신자들 모여 지내 최양업 신부 사목지이기도 병인박해 시기에 스러져간 하느님의 종 배문호·최종여와 무명 순교자들 함께 묻혀 있어 생명력 강한 야생화와 닮아
천안 성거산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 태조 왕건이 수헐원(愁歇院)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에 오색구름이 영롱한 모습을 바라보고 ‘신령이 사는 산’이라는 뜻으로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자를 써서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1100여 년 전에 이름 붙여진 성거산은 가톨릭 신앙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성스러움이 거하는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성거산에 소학골 교우촌과 서들골 교우촌 등이 만들어져 이곳 교우촌을 중심으로 가경자 최양업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들이 방문하거나 사목을 펼쳤고, 1866년 병인박해 시기에 숱한 순교자들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거산은 천주교 성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거산성지를 찾아 자연을 벗하며 순교를 마다하지 않았던 신앙선조들의 숨결을 느꼈다. ■ “아! 성거산!” 성거산성지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할 정도로 길고도 굴곡지고 가파르다. 국내 성지로서는 보기 드물게 해발 579m 성거산 정상 부근에 형성돼 있다. 성거산성지 6.2㎞ 전에 ‘천주교 대전교구 성거산성지’ 안내판이 처음 나온다.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게 된다.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 전방 3.5㎞’라고 적힌 안내판 위치부터는 성거산 산길에 접어든다. 과거 박해시기를 살던 신앙선조들이 신분을 숨기고 가슴을 졸이며 걷던 산길을 차로 오르면서도 “아! 성거산!”이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이렇게도 외지고 척박한 곳까지 올라와 서로 의지하고 형제애를 나누며 믿음을 키웠던 신앙선조들은 산이 높은 만큼이나 하느님을 가까이 모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구분된 성스러움의 본래 의미를 성거산성지에서 발견하는 듯했다.■ ‘순교자의 길’ 따라 교우촌터 만나다
제2줄무덤에서 나오면 성거산 순교자들이 하느님을 벗하며 살았던 ‘천안 성거산 천주교 교우촌터’(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길 이름은 ‘순교자의 길’이다. 길 옆에는 103위 성인 이름, 세례명과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가 적힌 유리병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103위 성인 이름과 세례명을 읽고 짧은 기도를 반복적으로 바치며 ‘순교자의 길’을 걷기만 해도 마음 한편에는 뜨거운 감정이 일어난다. 성거산성지 교우촌터에는 아담한 초가 세 채가 복원돼 있다. 신유박해를 피해 이주한 신자들이 모여 만든 성거산 교우촌은 1920년까지 120년 동안 그 역사가 계속되다 사라졌다. 복원된 초가들이 옛 교우촌 풍경을 일부라도 전해 줄 뿐이다. 교우촌 외형이 사라진 지는 100년이 넘었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신앙 선조들이 남긴 믿음의 유산은 지금도 우리 시선을 신앙의 길로 재촉하고 있다.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