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6·25 순교자’ 카폰 신부 유해 70년 만에 발굴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6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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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무명용사 묘역에서 전쟁 당시 적·아군 상관없이 군종신부로서 사랑 실천

에밀 카폰 신부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7일 군용 지프에 제대를 마련하고 한 병사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한국전쟁에 미군 군종신부(미국 위치타교구 소속)로 참전해 순교한 ‘하느님의 종’ 에밀 카폰(Emil J. Kapaun, 1916~1951) 신부 유해가 순교 70년 만에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The Defence POW/MIA Accounting Agency) 3월 5일 발표에 의하면 카폰 신부 유해는 하와이주 호놀룰루 소재 국립태평양기념묘지 내 무명용사 묘역에서 발견됐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은 전쟁 포로(Prisoner Of War)와 임무 수행 중 실종자(Missing In Action) 유해와 관련 정보를 확인하는 부서로, 2019년부터 호놀룰루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묻혀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에 대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왔다. 카폰 신부 유해가 호놀룰루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 묻혀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된 바 있다.

미국 국방부 발표와 워싱턴포스트 3월 5일자 보도 등에 따르면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은 유해 중 치아를 확인하고 카폰 신부 친척과의 DNA 대조 작업을 거쳐 카폰 신부 유해를 확정할 수 있었다. 카폰 신부와 함께 중국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미군들은 선종한 카폰 신부를 기리며 뗄감 나무를 모아 비밀리에 십자가와 월계관을 만들기도 했지만, 전쟁 전후 혼란기에 카폰 신부 유해 송환과 매장 기록이 정확히 남겨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카폰 신부의 조카인 레이 카폰(Ray Kapaun)은 유해 발굴 소식을 들은 후 “이런 날이 올 줄은 전혀 몰랐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이지 기적을 보았다”고 감격했다. 레이 카폰은 2013년 카폰 신부에게 주어진 명예 훈장(Medal of Honor)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카폰 신부는 1950년 11월 평북 운산 전투 중 중국군에게 포로로 잡혔지만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군종신부로서 헌신적인 사랑을 실천하다 폐렴 감염과 학대가 겹쳐 평북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5월 23일 선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 군종대교구 한국전쟁 참전 군종신부 전사자 명부에는 카폰 신부 선종일이 1951년 5월 6일로 기록돼 있다.

카폰 신부의 성자적 삶은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미군들의 증언을 통해 1954년 책으로 출간됐다. 우리나라에는 1956년 당시 신학생이던 정진석 추기경(전 서울대교구장)이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로 번역하며 널리 소개됐다.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매해 신임 군종장교 임관식에서 군사목에 첫발을 내딛는 군종사제들에게 「종군 신부 카폰 이야기」를 선물하곤 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