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경갑룡 주교 선종] 삶과 신앙, 발자취·장례미사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12-21 수정일 2020-12-23 발행일 2020-12-25 제 322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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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자립 위한 초석 다져… 지역 복음화에 헌신
대전교구 내·외적 성장에 토대 마련
본당 신설 강화로 밀착형 사목 펼쳐
공소 활성화 위한 지도자 학교 개설 
교구 사제 양성 위한 대전가대 설립
한국교회 군종교구 창설에도 기여 

12월 18일 대전가톨릭대학교 대강당에서 봉헌된 장례미사에서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가 고별식 중 성수를 뿌리고 있다.

■ 삶과 신앙, 발자취

경갑룡 주교는 1930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51년 9월 육군에 입대해 1956년 5월 포병 대위로 전역했다. 군 말년인 1956년 3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 1962년에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첫 소임으로 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보좌로 발령받았고 이후 잠시 금호동본당 주임으로 지낸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구청과 성모병원 등에서 재무를 담당했다.

1971~1976년 유학길에 올라 미국, 로마, 필리핀에서 영성신학과 상담학을 공부했고, 귀국해서 서울 논현동본당 주임으로 재임하던 1977년 2월 3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3월 25일 주교품을 받고 1984년 7월까지 교구 총대리 겸 명동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경 주교는 이 기간 중 1981년 11월에 구성된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에서 기념행사 위원장을 맡아 1984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과 103위 시성식 행사를 총괄했다.

1977년 3월 25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서품식에서 경갑룡 주교(가운데)가 강복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그리고 그해 7월 2일 제3대 대전교구장으로 임명돼 8월 29일 대전교구 주교좌대흥동성당에서 착좌식을 했다. 이는 제2대 황민성 주교가 선종한 지 5개월 만의 일로서, 통상 새 교구장 임명까지 1년 이상 걸리던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다.

그후 20여 년 동안 대전교구장으로 헌신해 온 경갑룡 주교는 오늘날 대전교구의 내적, 외적 성장에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교구 발전과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전기들이 경 주교의 과감한 결단들에서 비롯됐다.

취임 후 경 주교는 교구 재정 자립과 교구 체제 정비를 위한 조치를 단행했다. 먼저 재정 자립 원칙을 세워 외국 원조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본당 교납금 제도를 정착시켜 교구 재정을 확보했다. 또한 부교구장 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사무처장으로 대신했다. 나아가 교육국과 홍보국을 신설해 사목국과 관리국을 포함, 1처 4국으로 교구 조직을 개편했다.

사제단에 각종 위원회를 두어 각자 자신의 재능에 따라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신자 수 증가에 대응하고 지역 사회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본당 신설을 강화했다. 소외된 농촌 사목을 위해서 공소 지도자 학교도 개설했다.

1984년 8월 29일 열린 제3대 대전교구장 경갑룡 주교 착좌식.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경 주교가 가장 감사와 자부심을 갖는 것은 대전가톨릭대학 설립이다. 2005년 4월 교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가톨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경 주교는 “교구에서 일할 사제를 우리 손으로 길러 보자는 꿈을 갖고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불가능하다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 주교는 교구 사제들을 설득하고 협력을 부탁함으로써 그 결실을 이뤄냈다.

경 주교는 또 몽골 등에 해외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미디어를 통한 복음화를 위해 대전가톨릭평화방송을 개국했으며, 생명 수호를 위한 ‘성가정 생명장학금’도 마련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전교구는 2004년 말 본당 107개, 사제 236명, 신학생 161명, 신자 수 21만 9000여 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 냈다. 이는 교구장 착좌 당시 본당 53개에 신자 수 8만 9000여 명에 불과했고, 사제가 채 100명에 못 미쳤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발전이었다.

경 주교는 또한 한국 군종교구 창설에도 기여했다. 1986년 10월 주교회의는 ‘군인 사목에 관한 교황헌장’의 정신에 따라 군종교구 창설을 지지, 의결했다. 이어 11월 25일 당시 군종단 총재 주교였던 경 주교 명의로 ‘군종교구 설정 요청서’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제출했다. 한 차례 수정을 거친 한국 군종교구 정관안이 1988년 11월 한국 주교회의 의장 김남수 주교 명의로 인류복음화성으로 다시 송부됐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89년 한국 군종교구가 설정됐다.

경 주교는 1984년 8월 교구장 착좌식에서 “나를 보내신 주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어 나로 하여금 방사(放赦)된 성(城)처럼 지탱해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마음으로 호소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겸손되이 주님께 되돌아가고, 주님 안에서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세상에서 훌륭하게 소임을 다한 경갑룡 주교는 이제 주님 품에 안겼다.

2003년 12월 1일 대전평화방송 개국 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경갑룡 주교.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장례미사

“별이 지면 곧 새벽이 다가올 것이니 저희도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고, 하느님과의 여정을 주교님처럼 당당하게,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5년간 투병 끝에 선종한 대전교구 제3대 교구장 경갑룡 주교 장례미사가 12월 18일 오전 10시30분 대전가톨릭대학교 대강당에서 봉헌됐다. 미사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철저한 방역 조치를 실시한 가운데 70여 명이 참례했다.

이날 미사는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가 주례하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교회의 의장이자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현직 주교들이 공동집전했다. 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와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 등 일부 주교들은 대부분 빈소를 방문하거나 조문을 보내 왔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장관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고인을 맡기며 사랑하는 분을 잃은 한국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한다”고 조문을 보냈다.

경 주교의 오랜 투병 생활을 곁에서 지켜 본 유 주교는 “경 주교님이 촛불이 꺼지듯 쇠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하느님께 원망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며 “이제 고통 없이 그간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하느님 품에서 안식을 누리시기를 빈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경 주교님은 겉보기에 무뚝뚝해 보이지만 속내가 깊고 여린 분”이라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신자들을 사랑했던 고인이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빈다”고 고별사를 전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바친 헌신적인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한국교회와 대전교구, 우리는 모두 그분의 크신 사랑과 가르침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는 고별식을 마치며 “경 주교님이 5년간 투병생활 하시는 동안 늘 염려하고 기도하고 찾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2005년 4월 은퇴를 앞둔 경갑룡 주교가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약력

1930.2.12. 출생

1962.12.21. 사제수품, 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보좌

1962.12.21.~1966.12.14. 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보좌

(겸 서울대교구 재경부 차장 1965.01.~1967.7.)

1966.12.14.~1971.01.08. 서울대교구 재경부 국장

(겸 금호동본당 주임 1967.04.~1969.04. 겸 성모병원 경리처장 1967.09.~1967.11. 겸 청량리본당 보좌 1970.10.~1970.12.)

1971.01.08.~1976.06.10 해외 유학(미국, 로마, 필리핀)

1976.06.10.~1977.03.04. 서울 논현동본당 주임

1977.02.03. 부파다 명의 주교 및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임명

1977.03.04.~1984.07.12.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겸 주교좌명동본당 주임 1978.03.~1982.09.)

1977.03.25. 주교 수품

1981.11.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주교위원회 기념행사위원장

1984.07.02. 대전교구장 임명

1984.08.29. 대전교구장 착좌

1985.01.15. 한국천주교 군종단 총재

1995.11.27.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2005.04.01. 대전교구장 은퇴

2012.12.21. 사제서품 50주년(금경축)

2020.12.16. 선종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