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수도회 (하)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0-12-08 수정일 2020-12-08 발행일 2020-12-13 제 322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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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요청에 응답하며 활동 영역 넓혀
1964년 한국에 진출하며
교육·의료 사도직부터 시작
1973년 자립 관구로 승격

한자리에 모인 예수수도회 전체 회원들. 예수수도회 회원들은 설립자 메리 워드의 정신으로 이 시대 현실과 필요를 알아차리고 용기와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수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64년이었다. 한국교회와 연을 맺은 계기는 독일 뮌헨-님펜부르크 관구가 한국 미션을 결정했고 당시 총원장이었던 에델부르가 솔츠바허 수녀가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면서다.

그렇게 한국에 진출한 첫 그룹은 뮌헨에서 양성을 받은 한국인 회원 5명과 독일인 회원 2명이었다. 이때 로마 총원 참사 아가타 부르퀴너 수녀와 뮌헨-님펜부르크 관구장 타라시아 콘스탄틴 수녀가 동행해 공동체 출발을 축복했다.

첫 번째 분원은 서울 오류동에 세워졌다. 청기와 지붕이 특이했던 분원에는 수도회 진출 이전부터 입회를 기다려온 지원자들이 곧바로 받아들여졌고 한국인 종신서원자 박의열 수녀가 양성을 시작하면서 수련소도 개설하게 됐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의 공식적인 초대로 한국에 진출한 예수수도회는 1966년 가톨릭 학교가 없었던 대전 지역에 성모초등학교와 성모여자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먼저 교육 사도직으로 활동 문을 열었다. 1969년에는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해 지역사회 여성 교육에 주력했다.

아울러 그 시대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청주교구 충북 보은본당에 수녀들을 파견했다. 무의촌이었던 보은에 성모의원을 개원함으로써 주민들과도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익산에서는 독일 수녀원으로부터 의약품 원조를 받아 사회에서 소외된 한센인 치료에 헌신했다.

이런 학교 교육과 의료사도직에 이어 점차 유아교육과 본당 선교, 사회복지, 영성 사도직으로 활동 영역을 확산했다. 한국진출 10년도 안 된 1973년에는 자립 관구로 승격하는 등 비교적 빠르게 성장 발전했다.

1993년 수도회 총회에서 박기주 수녀는 제23대 총원장으로 선출됐다. 이는 수도회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권 밖의 회원에게 수도회 통솔을 맡긴 새로운 사례가 됐다. 국제수도회들 가운데서도 아시아인이 총원장이 된 것은 처음이었다.

현재 220여 명 회원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여성으로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이웃 선익을 증진함으로써 교회에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지녔던 메리 워드 정신으로 이 시대의 현실과 요구를 식별하고 용기와 사랑으로 응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수도회가 진출해 있는 나라는 총 23개국이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스페인 등 유럽과 칠레, 브라질 등 남미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소임을 펼치고 있다. 회원 수는 14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도요 벗으로서 교육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파견돼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수행하며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복음 선포를 하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