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은퇴하는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최용택 기자
입력일 2020-11-17 수정일 2020-11-18 발행일 2020-11-22 제 3220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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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역사 지닌 도민 지켜와… “하느님 백성 아픔 모른 척 안 돼”
- 4·3사건
공권력에 의해 3만 명 희생된 제주도민 입장에서 이해 대변
진상 알려 정부 사과 받아
비극 재현되지 않게 노력해야
- 강정마을과 제2공항
더 이상 환경 파괴 없도록 손 안 대는 노력 가장 필요
서로를 형제애로 존중해주고 평화의 섬 자리 지키길 기대

제4대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가 11월 17일 은퇴 감사미사를 마지막으로 일선 사목에서 물러났다. 강 주교는 지난 2002년 10월 제주교구장으로 착좌해 18년 동안 제주교구를 이끌었다. 제주에 부임하면서 강 주교는 제주의 깊은 상처이며 현안인 4·3 사건을 수면 밖으로 끌어내 한국 사회 전체에 관심을 이끄는 등 제주 도민을 위한 사목에 헌신해 왔다. 은퇴를 앞둔 지난 11월 13일 제주교구청 회의실에서 강 주교로부터 그동안의 소회를 들어봤다.

강우일 주교는 “가톨릭교회가 보는 종교의 존재 의미는 백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돕고 함께 하는 것”이라며 “그들이 아파하는 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 슬픔과 아픔의 땅 제주

“처음 제주에 왔을 때 참 아름다운 곳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기쁜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살다보니 제주가 그렇게 행복한 땅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제주도민들의 살아온 과거와 역사를 생각할 때 정말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죠. 지금 되돌아보니 도민들의 아픈 역사를 조금이라도 함께 하도록 하느님께서 저를 보내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년 전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했을 때 강 주교는 복잡했던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주교관에서 지내며 제주대학교 뒷길을 산책하며 행복했다. 제주교구장 부임 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16년 동안 사목활동을 하며 역동의 세월을 보낸 것에 대한 보답이자 특혜로까지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제주 개발의 광풍은 강 주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름다운 제주 지역에서 살며 대통령도 재벌도 부럽지 않았어요. 하지만 도로가 생기고 수만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니 마치 나무들의 시체를 보는 것 같았지요. 무책임하게 자연을 훼손하는 도 행정을 보며 슬픔과 분노를 느꼈어요.”

자연훼손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살아가면서 제주도민들이 겪었던 4·3사건의 참상을 알게 됐다. 강 주교는 제주 도민들에게 가슴 깊은 상처로 남아있던 이 참상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제주도민 3만 명이 학살된 이 범죄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 한탄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에 강 주교는 사건의 진상을 적극적으로 알려 결국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2014년에는 ‘4·3희생자추념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도 했다. 강 주교는 “4·3사건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많이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것 같다”면서도 “이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 좀더 4·3을 겪은 이들의 아픔과 상처를 후손들이 알고 기억하고 상기해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현되지 않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4·3사건 1세대 생존자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피해 생존자의 아픔을 도민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알리는 자리가 계속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양심 깨우는 예언자 목소리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시절, 강 주교는 사회 현안에 대해서 발언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한 이후 강 주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4·3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슬픔과 아픔의 땅 제주도민들을 위한 주교로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이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강 주교는 돌봐야 할 양 떼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강 주교는 “보통 사람들은 종교인이라고 하며 조용히 앉아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정도로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보는 종교의 존재 의미는 백성들, 시민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돕고 함께 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하느님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강 주교는 교회의 세 가지 직무인 사제직과 왕직, 예언직을 설명하며, 특히 예언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 주교는 “예언직은 세상 속에 불의가 저질러졌을 때, 하느님 뜻과 배치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이를 지적하고 고발하며 때로는 싸우는 것이 본질”이라면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 교회가, 성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로서, 성직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덧붙였다.

강 주교가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4·3사건 만이 아니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제주 제2공항 건설 등 현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예언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돼 군이 주둔해 있지만, 강 주교는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자리를 지키길 기대하고 있다. 교구는 강정마을에 프란치스코 평화센터를 열고 해군기지 반대를 넘어서 평화를 위한 적극적인 교육에 나서고 있다. 강 주교는 “평화센터는 무기를 통한 평화의 균형이 아닌 진실한 평화를 추구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 크게 드러나는 활동은 없지만 평화센터는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 체제와 체제 사이에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천천히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제주 제2공항과 관련해 강 주교는 “정부는 연간 제주 관광객 4000만 명을 목표로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 인원은 제주도라는 작은 섬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강 주교는 “이미 제주의 환경은 파괴되고 있으며, 식수와 생활 쓰레기 문제도 전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제주의 미래를 전혀 생각지 않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 환경 지켜 지속가능한 제주 이뤄야

강 주교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로 “손 안대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답을 내 놨다. 현재 제주도에서는 제2공항 외에도 다양한 테마파크, 영어마을 조성 등 개발사업이 줄을 서고 있다. 강 주교는 “제주의 자연과 환경을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면서 “한번 파괴된 자연은 재생과 회복이 더디며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데, 고작 돈 얼마 벌겠다고 이러한 개발을 진행하는 것은 도민의 미래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인용하며 세상 모든 것이 다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강 주교는 “생태계 모든 것이 다 연결돼 있어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도 발생한 것”이라면서 “현재의 코로나 사태나 앞으로 예상되는 제3의 팬데믹을 극복하려면, 모두가 연결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모두를 내 이웃 내 형제자매로 생각하며 존중하고 서로 도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교구장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강 주교는 “특별한 계획이 없다”면서 “당분간 보통 사람들처럼 은퇴 뒤 ‘백수’가 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교구장직에서 물러나지만 한국교회의 한 주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제주뿐만 아니라 어디든 기쁘게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 강우일 주교는…

1974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1986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주교품을 받았다. 2002년 제4대 제주교구장에 임명된 이래 18년 간 교구장직을 맡아왔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상임위원(2005~2013년)과 사회위원회 위원(2013~2018년)으로 활동했다.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과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