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8점 재현해 낸 김경란·남명래 작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0-05-04 수정일 2020-05-06 발행일 2020-05-10 제 319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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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전 원작의 색감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 일환
고증학적 연구 통해 작품 완성

남명래(왼쪽) 작가와 김경란(오른쪽) 작가가 4월 29일 재현된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그림들을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 벽면에 걸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로 부통 신부의 벽화들이 보인다.

“가장 힘들었던 건 선 한 획, 점 한 점, 부통 신부님의 색을 찾아내는 일이었지요. 색을 찾아내는 일이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 벽면에 그려진,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8점을 원본과 똑같이 ‘재현’하는 일은 색과의 싸움이었다. 김경란(마리아), 남명래(레오) 두 작가는 거의 1년 반 이상을 색을 찾아내는 일에 매달렸고, 마침내 재현된 벽화 8점을 성당 벽에 걸었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1960년대에 대흥동성당 내부 양쪽 벽면에 각각 5점씩 10점의 벽화를 그렸고, 그 중 2점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말에 흰색 페인트로 덧칠되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대흥동본당(주임 박진홍 신부)은 지난해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산학협력단의 도움을 받아 부통 신부 벽화를 재현했다. 두 작가 역시 산학협력단 연구위원 자격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성당 벽 속에 묻혀 버린 부통 신부의 작품들을 벽을 파내지 않고 원본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김경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원본 벽화를 촬영한 흑백 필름을 입수했고 둘째, 국내에 부통 신부님의 작품들이 많으며 셋째, 부통 신부님이 벽화를 그리기 위해 구입한 페인트와 물감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색깔을 찾는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이지요.”

벽화 재현을 직접 맡았던 남명래 작가는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프랑스의 유명 애니메이션 학교 ‘에꼴 에밀 꼴’(Ecole Emile Cohl) 출신으로 수많은 국제 카툰 및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부통 신부님의 작품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카툰 작업과도 비슷합니다. 부통 신부님의 색 사용이 비교적 단순했다는 점도 벽화 재현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벽화의 색깔을 찾아내기 위한 두 작가의 노력은 헌신적이었다. 벽화를 촬영한 필름이 있었기에 정확한 형상은 확보했다. 국내에 존재하는 부통 신부의 수백 점 그림을 분석해 색 사용의 습관과 형태 등을 통계학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각 벽화의 형상들에 적용, 어떤 색깔이 사용됐을지를 파악하고 채색했다.

남명래 작가에게 있어서 부통 신부 벽화 재현은 개인사적으로도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5년 전 보석 같던 딸이 세상을 떠난 후, 실의에 빠져 술로 지내던 그는 심지어 대전천 뚝방에서 노숙자처럼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딸에게 부끄러움을 느껴 스스로를 추스르던 중 부통 신부 벽화 작업을 제안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성당을 드나들면서도 외면했던 세례를, 딸이 지어 준 레오라는 세례명을 받고, 벽화 작업까지 제안 받으니, 하느님의 섭리로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부통 신부님의 그림들과 보냈습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