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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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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 2025-07-09 09:51:04 수정일 2025-07-09 09:51:04 발행일 2025-07-13 제 345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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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도시의 생존」이란 책이 출간되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에드워드 글레이저, 데이비드 커틀러 교수가 코로나를 계기로 쓴 책이다. 두 저자는 묻는다. “도시는 늘 재해, 전쟁, 전염병 같은 위기를 맞게 되는데 과연 소멸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

저자들의 답은 매우 낙관적이다. 도시의 역사는 늘 위기의 연속이었지만 슬기롭게 대응해 생존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다. 한국어판 추천사 부탁을 받아 원고를 읽고 찾아낸 두 낙관론자의 논거는 ‘이타심’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 존재이지만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이기심을 누르고 이타심을 발휘한다. 위기 앞에서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공멸할 것이니, 나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라도 이타적으로 행동해야 함을 본능으로 안다. 코로나 덕분에 ‘행복하지 않은 선진국 대한민국’의 원인과 해법을 일깨워준 귀한 책을 만났다.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빛나는 나라다. 문화예술 역량은 세계 최고다. 그런데 이처럼 빛나는 부자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매우 낮다. 우리는 지금 한편으론 빛나지만, 다른 한편으론 많이 아픈 나라에서 살고 있다. 중증 질환을 드러내는 증후들은 많다.

서울 강남 어느 산후조리원의 2주 사용료는 4천만 원이 넘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막 태어난 신생아 의대 보내기 커뮤니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4세 고시’의 진원지다. 성공하려면 무조건 경쟁하라고 몰아치는 ‘경쟁교육’이 아직도 지속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에 합격한 신입생 수백 명이 의대를 가려고 자퇴하는 걸 어찌 보아야 할까?

월급을 평생 모아도 살 수 없을 만큼 치솟은 부동산도 아픈 대한민국의 한 증상이다. 집값은 내려가야 마땅한데 내려갈 수 있을까?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내 집을 보유하고 있는데, 집값 하락을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집값 안정화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들은 일찍이 문제를 간파하고 대응했다. 19세기 말부터 주택법이 제정된 이유는 집을 ‘재물’이 아닌 ‘인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임대주택과 사회주택 비율은 20~30%를 차지한다. 10%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 시민들 가운데 자기 소유 집에 사는 사람은 25%에 불과하다.

인구가 급격히 줄어 가장 먼저 ‘인구 제로’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도 우리가 많이 아프다는 방증이다. 인구문제의 핵심은 감소보다 쏠림이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쏠려 한쪽은 극심한 경쟁으로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다른 한쪽은 지탱할 인구가 없어 소멸로 다가가는 악순환에 갇혀있다.

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국민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원인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균형감을 잃고 마냥 이기적으로 내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자식만 잘된다면 경쟁교육도 좋고, 집값은 절대 내려가면 안 되며, 나고 자란 내 고향이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무심한 그 마음 때문 아닐까?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 마음에는 ‘이타심’이 늘 살아있었다. 어디에나 어려운 사람들은 있었지만 품고 살았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허리춤 조이고 노력해 ‘부자 나라’는 되었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해야 하는 ‘행복하지 않은 국민’으로 살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이타가 곧 이기’라는 깨달음, ‘이타적 이기주의’가 치유의 길일 것 같다. 위기에 빠진 공동체가 생존하려면 이타심을 앞세워야 한다는 상식의 회복이다. “부자되세요!”란 말을 거리낌 없이 주고받던 때부터 이 병이 깊어진 것 같다. 균형감을 회복해 고쳐보자. 어디서나 누구나 함께 행복한 진짜 선진국을 만들어보자. 따뜻했던 본래 우리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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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