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김포이웃살이’에서 만난 하느님의 자비

박주헌
입력일 2024-04-01 수정일 2024-04-03 발행일 2024-04-07 제 3387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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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교실, 매주 150명 이상 찾아 한국 사회 적응 노력
레인보우 식당, 식사 나누고 일상 공유하며 타향 생활 원동력 충전…기존 지원 끊겨 운영에 난항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기념하고 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는 말씀처럼, 창조주를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센터장 안정호 이시도로 신부, 이하 이웃살이)는 매 주일 센터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수업을 마치면 ‘레인보우 식당’에서 무료로 점심 한 끼를 나누고 있다. 이주민들은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점심 한 끼를 나누는 한국 이웃들의 평범한 자비 실천을 통해 한국 생활 적응이라는 꿈과 우정의 연대를 키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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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김포이웃살이 1층 레인보우 식당 앞에서 안정호 신부(맨 왼쪽), 오현철 신부(맨 오른쪽), 직원 및 관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주헌 기자

■ 꿈을 키우는 교실

“오색나물을 ‘무쳤어요’. 밥에 ‘비벼서’ 먹을 거예요.”

3월 31일, 아침 10시부터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어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센터 층마다 울려 퍼졌다. 이날 진도는 마침 ‘음식과 요리’. ‘무치다’, ‘비비다’처럼 뜻이 생소한 단어들 일색이다. 그래도 이주노동자들 목소리는 더욱 또랑또랑해졌다. 베트남, 네팔, 캄보디아 등 곳곳에서 왔지만 수업을 듣는 순간만큼은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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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식당에서 이주민들을 위해 배식 봉사를 하고 있는 김주찬 신부. 사진 김포이웃살이 제공

이웃살이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무료 한국어 수업 교실을 열어 왔다. 처음에는 노동 관련 상담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도와왔지만, 그들이 한국 사회와 노동 환경에 무사히 적응하려면 언어 교육이 필수였다.

이주노동자 외에도 결혼이주여성들까지 150명 이상이 매주 교실을 찾는다. “큰 병을 앓는 아이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편찮은 양친과 식구들까지 봉양할 사람은 건강한 나뿐이라” 등 가슴 아픈 사연을 떠안고 한국행을 택했다.

대다수가 E-9(비전문취업) 비자로 들어오는 그들은 한국어 능력을 높이고자 열심히 공부한다. 조건을 충족하면 본국에 있는 가족도 한국에서 함께 머물 수 있는 E-7(전문직취업) 비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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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사진 박주헌 기자

주일에 마련되는 한국어 교실은 평일 내내 일하고 토요일 근무도 다반사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꿈을 키우는 장소나 마찬가지다. 네팔에서 온 라전 빗터(35)씨는 “조립 및 용접 밴딩 일은 노동시간도 길고, 버는 돈 대부분을 본국 식구 6명 생활비로 보내느라 한국어를 배울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이면 숙소에서 쉴 수도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할 그날을 위해 오늘도 이웃살이를 찾았다”고 덧붙였다.

■ 우정을 나누는 한 끼

정오, 2시간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1층 레인보우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무와 당근, 느타리버섯, 콩나물, 고사리, 상추가 들어간 오색나물 비빔밥, 달걀부침과 누룽지탕으로 마련된 이날 메뉴. 매주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한식 밥상이 준비되지만, 무지개처럼 다양한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배고픈 학생들을 빈속으로 보낼 수는 없잖아요. 늘 먹듯 평범한 밥 한 끼 먹여서 보내는 것뿐이에요.”

원래 이름 없는 센터 1층 식당이었지만 2021년 ‘레인보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언어·문화, 피부색도 제각각인 무지개 같은 사람들이 식사를 함께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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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이 3월 31일 김포이웃살이 1층 레인보우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박주헌 기자

인근 인천교구 하성본당(주임 김동건 바오로 신부) 신자들, 통진신협 봉사팀, 이웃살이 직원들이 순서를 정해두고 주방 봉사를 펼친다. 고립되기 쉬운 이주민들이 식당에서 모여 서로 일상을 공유하며 공동체 의식을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이주민들은 식당에서 동포를 만나 고향 소식을 주고받고, 직장 생활에 치여 한 주 내내 잊고 살던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한국에서 살아갈 원동력을 채운다.

네팔에서 온 수레스(32)씨와 콸라(32)씨 부부는 “매 주일 식당에서 고향 친지들을 만나 네팔어로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살아 있다’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주중 일에 지쳐서 주말이면 밥도 대충 때우고 누워만 있게 된다”는 그들은 “우리를 생각해 주는 한국 이웃들이 챙겨주는 밥 한 끼는 곧 응원 한 끼”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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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식당에서 봉사하는 이주노동자들. 사진 박주헌 기자

■ 자비에 화답하는 이주민들

점심 한 끼지만 150명이 넘는 이주민 식사를 준비하려면 큰 수고가 든다. 10명 남짓한 주방 봉사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많은 양의 식재료 다듬고 조리, 설거지까지 고된 작업을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이주노동자들이 매년 늘며 교실과 식당을 찾는 이주민도 전보다 많아졌지만,  3년간 식당 운영에 큰 버팀목이던 김포복지재단의 지원 사업이 만료돼 부식비를 충당하기 어려워졌다.

쉼터에 머무는 미등록 이주민들에게는 주방 일을 거드는 대가로 용돈을 주며 응원할 수 있었지만 이제 옛말이 됐다. 베트남에서 귀화한 직원 원가희씨는 “직장을 얻기는커녕 병원도 마음 놓고 못 다니는 미등록 이주민들을 잘 알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주민들은 대가 없이 도와주는 이웃살이의 진심을 헤아리기에 적극적인 도움으로 화답한다. “받기만 할 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직원들 말대로 매주 주방 봉사를 열심히 거든다. 바쁜 봉사팀 손을 덜어주고자 식당 한편에서 달걀을 부치고, 귀가가 늦더라도 주방에 남아 식판과 수저, 조리 솥까지 꼼꼼히 설거지한다.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을지…”라며 매일 센터 근처 잡초를 뽑고, 무보수로 주방 일을 돕는 미등록 이주민들도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미등록 이주민 프까아(가명·39)씨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쉼터에서 머물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며 “거기에 비하면 내 도움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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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친 이주민들이 3월 31일 김포이웃살이 1층 마당에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박주헌 기자

■ 이웃살이

이웃살이는 한국어 수업 교실과 레인보우 식당 외에도 ▲임금 체불, 산업재해 등 노동·인권문제 관련 노동상담 ▲긴급 쉼터 제공 ▲다문화가정 아동 공부방(꿈터) 및 결혼이주민 여성 공부방(디딤자리) 운영 ▲필리핀, 베트남 등 국가 공동체들의 문화행사 및 국가별 명절 해사 지원 ▲이주민들의 정기 건강검진 및 무료진료 서비스 연결 등 이주민의 인간다운 생활과 사회 적응을 돕는 동반자로서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료담당이자 레인보우 식당 사업을 맡은 오현철(프란치스코) 신부는 “식당 지원 사업이 끊어진 지금, 특히 미등록 이주민들이 소액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작은 자비를 실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주방 봉사가 아니더라도 유리창 닦기 등 소소한 실천으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후원 계좌: 농협 351-1184-3584-93 예금주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 문의: 031-987-6241 김포이웃살이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