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죽음」 을 부르짖던 니체가 20세기 그리스도교 역사의 가장 격렬한 도전자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음은 명동 성ㆍ바오로서원서 개최됐던 제13회 토요강좌에서 「니체와 그리스도교」를 주제로한 김태관 신부(서강대학 철학과 교수)의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현대무신론의 계보를들추면 포이엘바호나 니체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칸브의 「순수이성비판」에서부터 출발하여 헤겔의 「변증법」 포이엘 바흐의 「변증법」 포이엘 바흐의 「인간의본질론」 쇼펜하우웰에서 니체에 이르러 그 정점을 이뤘다.
헤겔의 무신론적 가면을 벗겨버린 바우엘의 뒤를이어 니체는 한발 더 떠서 자신을 무신론자, 반(反) 그리스도자로 자칭하면서 신을 살해했다.
감히 모두들 용기를 못내고 움추리고 있을때 신의 사망을 전세계를 향해 절규했던 것이다.
그는 유일한스승이었던 쇼펜하우웰마저 「위조범도당」에 몰아넣고 헤겔을 「비겁자」로 우롱하면서 아무도 선언하지 못했던 신의 죽음을 과감히 선포하여 근대인류사조의 최대사건을 야기시켰다. 즉 그는 무신론자들의 최고의 정점이자 최후의 말로를 장식했다.
그러면 니체의 신의 죽음을 선언한 그의 사상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그는 『신은 인간의 거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예외적인 강력한 상태에 있을때 그 원인을 감히 자신에게 들리러고 생각지 못하고 자신과는 소원한 초인간적인 존재에 그것을 귀속시키고 그 속성을 맡긴다. 인간성에는 평범하고 비참하고 빈약한 면(인간영역)과 귀하고희귀한 압도적 초연한면(신 영역)이 있다. 종교는 이격탈바꿈이 변질한 경우다.
그것은 인간을 탈락, 격하시키는 과정이다. 인간의 문제는 이치명적 내리막길에서 상승하는것이다.
부당히 탈취당했던 우리의 숭고하고 자랑스러웠던 영혼의 위치를 회복해야한다. 그리스도교는인간의 탈락과 격하의 과정을 극단적으로 추진했고 모든선과 위대성, 진리는 「은총」이라는 것에 의해서 주어진다고하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이룩한 찬란한 역사는 한탄을 금치못할 현상이다 그 역사는 인간이 인간을 짓밟고 무서워할수있는 근거와 그러한 권위의 원리를 찾았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중상하기 위해서 하나의 다른세계를 발명했으나 허무밖에 손에잡지 못했다. 이 무(無)에서 인간은 인간의 실재를 심판하고 단죄하는 것으로 이름 붙여진 신과 진리를 조작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식의 불청객이다. 그를 부인해 소명시키기 위해서는 그의 존재증명을 반박하기보다는 그런 관념의 형성과정과 인간의식속에서의 증거방법과 신, 신앙이 관록을 차지하게된 이유를 분석하면 족하다. 이런 역사적반박만이 결정적인 것이며 이 반발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무력할 것이다.
인간이야말로 그의 의지의 행동과 의욕으로써 자신을 대담하게 강행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주입시키는 교리, 신의신앙은 인간을 훈치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인간에게서 이 신앙을 없애기 위해선 자기스스로가 상승 하도록 자신이 훈육할 수 있게 해야한다.
그러니까 인간에게서 세계창조자의 자격을 거부한 신, 신앙을 파괴하기 위해서 신의 죽음을 소리높히 선언해야한다. 사색은 즉 창조다. 즉 사색의 주인인인간은신이다.
이렇게 역설했던 니체는 전세계를 자기 내부로부터 창조하는 것이 그의 최고의 과제였다. 바야흐로 니체는 창조하는 허영심과 명예심, 반신(反神)반창조자의 유아독존적인 역할이 니체를 유혹하게 된다. 세계를 창조하는 신은 니체의 거만한자존심을 손상시키는 경쟁자니까 거부되어야했다.
그는 다시 「짜라루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하나의 억측이다. 가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진리의 의지는 일체의인간이 사고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게끔 변화시킨것이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즉 니체는 신이란 의식내부의, 다른곳에서는 살 수없 다는 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내 어찌 신이되지 않고 견딜 수 있겠는가고 독설하면서또한 신이 존재한다면 더 창조할것이 무엇이냐면서 그 존재를 부인했다.
절대적 창조적 자아와 다른 창조자는 공존할 수 없다는 그의 유일성은 그의 창조주의적, 극단적 개인주의에 역행하는 신은 해체되어야했다. 그래서 그의 유아독존적 거만은 자신이지 옥의고통을 자랑삼고 발밀에 대지가 없어진 공허의 나락에 떨어진 것이다.
야스퍼스는 『니체의 보편적 부정성은 그 부정안에서 오히려 존재자가 계시된다』고 꼬집고 『철저한 부정의 서술은 항상적극적인면에서 이루어진다』고 니체의 신의 사형선고를 반증했다. 창조자, 신이 없어진 막다른 골목에서 니체는 초인을 출연시킨다 또그자신이 초인이되려고 애썼다. 니이체는 신의죽음뿐만 아니라, 신의 존재밑에 억눌려있는 인간들을 해방시키려고 애썼다. 그는 절대적 순명이 좌우되지 않는 의지자유만이 인간을 신으로 만들며, 이운명적원리는 인간을 자동화한다고 했다.
신과 같은것, 신을 만드는 자동기계가 된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감행하려고 뛰어 들었다.
그러나 니이체는 신을 육좌에서 추방하고 인간을 육좌에 앉히려고 했지만 결국 옥좌의주인 초인은 현실의 대지에 뿌리를 박을 수 없는 나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니체는 신을 죽였는데도 그의 광증은 멈추지 못하고 절망과 우울에 방황했다. 온갖 노력으로 자신을 재물로서 희생하면서 「허무」를 메꾸려고 신을죽인 후 초인의 출연까지 시키면서 연극행위를 내세웠으나 결국 신이죽은 후 검은 나락만이남고 피안의 목표는 증발됐다.
인간의고향의 영원한 향수는 좌절되고 공전할 뿐이었다.
칼레비드의 말을 빌리면 『니체는 현대인의 해방된 현존재를 세계희귀라도 영원한 법칙속에 또 다시 연결시켜서 그자신의 실존을 파멸지었다』고 했다.
사실 어렸을때의 탈남성적 상태에 대한 반발과 흥분, 격정 등의 광증은 다소 해소됐을지 모르지만 그와 상응되는 문제점 영겁희귀설은 본질적인 모순으로 남고 말았다.
신의 죽음은 치명적인 반동을 초래했다.
인간의 신격화는 인간의파괴, 인간성의해체를가져왔다.
니체가 「디어니셔스의 참가에서」짜라투스트라가 당면하는 절망처럼 자신이 배제하려던 자기 자신에게 시체가 되버림을 고백해서 그의 위장됨을알린다.
그는 종료(終了)적인 신앙을창조하려고 그리스도와 대립했다.
어렸을 때부터 프로메레우스의 유령이 항상 니체의 생애를 따라다녔고 성인이 된 후에는 탈남성적 도피의 노력과 어렸을때의 과잉보호의유산인 유아독존성 안하무인 거만 등이 그의생애와 사상을 결정적으로 지배해 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꽉짜여진 기존세계질서에 반항, 폭력으로 창조하려는 의욕이자신의 내부에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 고독과 흥분과 우울의 대표적 정서를 지녔던 이 문화가요 철학자였던 천재 니체만이 이 길을 걸었던가? 그러나 토스토에프스키는 니이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무신론 또한 니체를 열렬히 신봉했던 라인 하르트 요하네스ㆍ졸겐과 마달렌스 서메이유 여류심미가는 스승을 초월해서 섭리적인 신의 체험을 통해 인류를 더한층 높이 승화 끌어올렸다. 키엘케고르는 소크라테스주의자로서 실존을 승화시켜 『신비는 합리적인 체계가 아니고 신앙은 사고의세계가 아니다. 신자는 사변가가 아니다』라고 신앙의 세계를 설명하면서 『실존적개인은 실존정신과 대면하고 있다』고 단순한 진리를 반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