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제2차 아시아 꾸르실료 협의회 「마닐라」 총회 참가기

입력일 2019-12-05 16:09:30 수정일 2025-05-27 16:48:13 발행일 1986-03-16 제 1497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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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간 교육자료ㆍ빨랑까 교환키로
연기 통보 못받은 한국ㆍ호주만 참가 
선거 후유증으로 하루만 개최 
독재자 마르코스 비참한 말로 목격
아시아 꾸르실료협의회 총회에 참가한 각국대표들(앞줄 가운데 앉은 이가 필자)

제2차 아시아 꾸르실료협의회 총회는 2월 20일부터 23일까지 필리핀「마닐라」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그러나 필리핀 대통령 선거 후유증으로 회의를 단축하여 21일 하루동안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참가국도 원래 8개국이었으나 필리핀 한국 호주대표만 참석했다. 대만대표는 「마닐라」까지 왔으나 회의에는 참석치 않았다.

필리핀 사태가 갑자기 악화되자 2월 18일 회의를 연기하기로 결정하여 각국에 통보하였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연기통보를 받기 전에 출발하여 4개국 대표만 도착했다.

이번 회의는 원래 하이메 신추기경의 개회미사로 시작하여 3일간 알찬 프로그램으로 짜여져 있었다. 또한 이번 회의를 통하여 아시아 지역이 영어 사용권인 제 3그룹에서 독자적인 꾸르실료 협의회 기구를 창설할 계획이었으나 이 안건은 다음 회의로 연기됐다. 다음 회의는 금년 5월말이나 6월중에「타이페이」나「마카오」등 지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한국 대표단으로는 필자와 최용록 지도신부, 주희숙 부주간과 김경숙 前여성부장 등 모두 4명이 참석했다.하루동안의 회의였지만 3개국의 꾸르실료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호경험과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어 무척 유익한 시간이었다.

3개국간에 필요한 자료와 기도, 빨랑까를 교환하기로 했다.

꾸르실리스따 재교육에 대한 자료와 부부 꾸르실리스따 회합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다. 또한 귀중한 자료로서 서울대교구 제 1차 꾸르실료 기념사진도 입수했다. 19년전에 필리핀 형제들에 의하여 한국에 꾸르실료가 도입되었는데 그 당시 한국에 와서 지도한 형제집에 초대되어 그 사진을 입수했다.

회의시간 외에도 그곳 꾸르실료 지도자들은 우리 대표단을 여러번 만찬과 오찬에 초대했고 우리 대표단도 한국식당에 필리핀 대표단을 초대하여 답례했다. 이러한 모임에서도 주로 꾸르실료 운동이 화제가 되어 꾸르실료의 국제적인 추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었다.우리 대표단은 회의를 마치고 24일 홍콩으로 향발할 에정이 었으나 출발할 수 없었다. 혁명군이 공항을 장악하여 모든 비행기의 출국이 취소되었다.마침 25일 대한항공이「마닐라」에 도착하여 특별교섭을 해서 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직행했다.과연 한국국민은 용감하다. 다른 모든 비행기가 위험하여 오지못하는 곳에 유독 우리나라 비행기만 도착하여 우리 대표단을 서울에 도착시켰다.

필리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 대표단이「마닐라」에 체재하면서 좋은 체험을 했다. 20년간 일인 독재를 하면서 부정과 부패와 부정선거를 자행하다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 마르코스 대통령의 비참한 말로를 목격했다.

20년전에는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3배나 되던 필리핀이 현재 우리나라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간 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을 받았지만 마르코스 대통령과 그의 심복 베르장군 등 일당의 부정축재와 재산의 해외도피로 나라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 나라는 빈부의 차가 극심하다. 약 7%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의 65%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 대부분의 국민은 2~5만원의 한달 수입으로 생활해야만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수도시설이 없어 빗물을 받아먹기 때문에 시력이 나빠지고 실명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집이라곤 방한칸에 10명의 가족이 앉아있기조차 어려운데, 기거하다니 그 참상은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나라 판자집은 대궐과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년간 마르코스가 그토록 잘못하고도 더 집권하겠다고 부정선거를 했으니 모든 국민이 완전히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사표시방법은 평화적이요 민주적이었다. 우리나라의 격렬한 데모와는 대조적이다. 4백 50년간 스페인과 미국식민지 통치하에서 필리핀 국민이 배운 소산이리라!

과연 하느님은 정의의 편이요 약자의 편이었다.국민의 재산과 알 권리를 가로챈 독재자를 그냥 두지 않았다. 탐욕스러운 무리들을 멀리 추방하시고 약한 백성의 외침을 들어주셨다.

 

조규철(꾸르실료한국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