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그림 박사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를 포함해 1500만 명에 이르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의 여정에 필수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한일 간의 관계 개선에 있어서나 한반도 평화 실현에도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라는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확한 요청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제3회 국제학술대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역적인 평화 정착의 해법과 실천 방법을 모색했다는 면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여 줬습니다.”
그림 박사는 제3회 국제학술대회 주요 발표 주제였던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특히 일본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실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저는 일본에서 많은 일을 했고 지금도 자주 일본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 평화와 화해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인사 중 한 사람이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입니다. 지난해에 ‘종교 자유와 비즈니스 재단’이 마련한 ‘글로벌 비즈니스 평화 포럼’(Global Business and Peace Forum, 격년마다 개최)에 참가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이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웅변적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의 경우가 일본 내에서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본인으로서 하토야마 전 총리처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피해 당사국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국이나 중국에서처럼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진솔한 접근과 인식을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박사는 일제가 한반도를 통치한 결과로 빚어진 남북 분단과 6·25전쟁으로 인한 남북 대치 국면의 고착화에 대해서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특히 올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면서 관심이 고조됐던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종교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을 들려줬다.
“제 아버지는 6·25전쟁 기간 중 강원도 철원군에 주둔한 미군 부대 소속 직업군인(GI)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6·25전쟁으로 인해 지금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가 한반도에 파병되기 전 미국 조지아에 먼저 배치됐을 때 제 어머니를 만나 저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현재 86세입니다.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 중에 부대 근처에 있는 예배당에 나가곤 했습니다. 6·25전쟁 전에는 남한보다 북한의 그리스도교가 더 강력했습니다. 현재는 남북의 종교적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온다면 북한의 종교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일성 일가도 사실 그리스도교가 집안의 배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림 박사는 “그러니, 평화를 위해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라며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에 기도의 힘이 밑바탕이 돼야 함을 시사했다.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 조건으로 거론되는 ‘북한 비핵화’에 대해 그림 박사는 어떤 입장일까. “북한 핵은 북한에 대한 외부의 군사공격을 막는 실질적인 수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자신들의 정권이 존속된다는 보장이 없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북한이 주민들에게 종교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핵을 포기하기 위한 하나의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올해 교회 안팎으로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인가, 교황 방북이 성사된다면 북한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였다. 그림 박사는 교황 방북을 희망적으로 바라봤다. 교황 방북 성사에 한국교회도 희망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교황이 방북을 고민한다면 그것은 방북이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놓고 따져 본다는 의미입니다. 교황 방북이 북한 정권에 선전 요소로 이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실제 방북한다면 교황은 구체적인 언어로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교황은 북한에 있던 유서 깊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재건과 수감돼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석방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고 북한은 교황의 요청에 협의를 할 것입니다. 교황 방북은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림 박사는 동서독 통일 과정에 종교가 근저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 사실을 언급하며 74년간 분단된 채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의 통일도 종교의 참여와 연대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저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장벽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현재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의 아버지는 동독에서 루터파 목사로 일했습니다. 동독은 공산주의 국가였고 종교에 통제를 가하긴 했어도 종교의 기능을 인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독 간에는 신앙의 다리가 연결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 동독은 종교적 상황이 다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해 ‘지상 종교 공동체’(open religious community)를 재건하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것이 남북 통일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 브라이언 그림 박사는…
브라이언 그림 박사는 미국 ‘종교 자유와 비즈니스 재단’(RFBF)을 2014년 설립해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사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림 박사는 ‘종교 자유와 비즈니스 재단’을 설립하기 전에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세계 종교에 관한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분석, 이를 토대로 한 사회과학적 연구를 수행했다.
그림 박사는 1982년부터 2002년까지 20년간 가족과 함께 중국, 구 소련, 독일, 몰타, 중동 등 다양한 나라를 찾아 교육자, 연구자, 지역 발전 코디네이터 등으로 정열적인 활동을 펼쳤다. 현재 CNN, BBC, Fox, CBS 등 세계 유수 언론매체에 종교 문제 전문가로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포럼의 패널로도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림 박사는 세계 평화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2017년 ‘한반도 평화상’(Korean Peninsula Peace Prize), 2018년 ‘세계 평화상’(World Peace Award) 등을 수상했다.
그는 「부인된 자유의 대가」(The Price of Freedom Denied, 2011), 「세계 종교 데이터베이스」(The World Religion Database, 2008~2013) 등 다수의 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