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가 있었답니다. 맑은 물, 돌 틈의 이끼, 종종 들어오는 맛있는 먹이, 동그랗고 예쁜 하늘. 그것이 개구리의 전부였습니다. 어느 날 밖에 살던 개구리가 들어와서는 끝없는 바다와 하늘, 넓은 초원과 여러 종류의 맛있는 먹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심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양산 기슭,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살다가 세상을 한 번 다녀오면 심한「앓이」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털어놓는 아픔들, 돌아오는 김에 라디오로 들려오는 세상의 소식들, 갈수록 더해가는 가정의 불화…. 버스에 내려서 식빵이라도 사려하면 너무 종류가 많아서 더듬다가 집어드는 것은 결국 습관 속에서 온 매일 먹는 똑같은 빵. 수녀원을 향해 오르는 발길은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공기로 신선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도 어떤 GAS가 몇 PPM을 넘었는지 두통과 「앓이」는 계속된다.
가끔 우리 수녀들은 우물 안 개구리요. 앞뒤로 꼭 막혔다는 소리를 듣는다. 차라리 안 보고 사는 꼭 막힌 수녀가 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픔을 안기에도, 기쁨을 나누기에도 벅차고 내용이 다른 수도원의 기쁨과 아픔은 개구리의 우물처럼 우리가 살기엔 편하다.
여기에도 동그렇게 보이는 하늘이 있고 하늘을 가로 지르는 해ㆍ달ㆍ별도 보며 가끔은 구름도, 비도 느낄 수 있다.
사랑을 위한 규칙으로 서로를 묶기도 하고 지도적 봉사가 일방적 통치권력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어느 땐 서로 알아 볼 수 없는 신앙의 어둠도 내린다.
어느새 이 우물의 과정이 끝난 개구리가 세상에 웅비했을 땐….
차라리 우물 밖의 일을 거짓말이라 한 우울 안 개구리의 무지가, 부럽고-세상의 파도와도 같이 밀려드는 이기(利己)속에서-그립다.
내가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으로, 우물이 얕아 지라고 기도하기엔 세상이 너무 넓다.
그래서 우리 수도자는 차라리 좁고 동그란 하늘이 있는 우물을 그러워하는 개구리인듯 싶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을 그리워하는 개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