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와 서울시 중구청이 8일 마련한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 서소문과 천주교 박해’ 주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가 축사를 통해 서소문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서울 서소문과 서소문 순교성지가 품은 의미를 교회 안팎에 밝히는 자리가 마련돼 관심을 모았다.
‘서소문 순교성지’는 새남터와 더불어 조선 박해시대 공식적인 처형장으로 의미 깊은 순교터다. 특히 정하상(바오로)과 강완숙(골룸바)을 비롯한 성인 44위 등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스러져간 역사적 현장이다. 이렇듯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성지에 관한 연구 및 개발 노력은 제대로 이뤄져 오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서소문은 서울시 역사 보존과 지역 개발 면에서도 소외된 지역으로 꼽힌다. 현재 서소문 순교성지터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의 공원으로 조성돼 있지만, 주변 환경이 열악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성지 관할 본당인 중림동약현본당도 관리·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대교구와 서울시 중구청은 8일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 서소문과 천주교 박해’ 주제 학술 심포지엄을 마련, 서소문의 교회사적 의미 및 보존 방향 등에 대해 심도 있게 제언하는 장을 펼쳤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은 (사)서울문화사학회(회장 이용규)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며 서울성곽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앞서 한국사 및 지역사회 안에서 드러나는 서소문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장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는 심포지엄 축사를 통해 “서소문 앞은 서울역이 생기기 전부터 대중들이 서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인간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증거한 현장이었다”며 “가톨릭 교회사적 의미를 넘어서 깊은 정신적·문화적·역사적 문화유산을 간직한 서소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곳이 세계적인 역사문화 공간으로 보존, 개발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대교구는 지난 9월 봉헌된 서울 중림동약현본당 설립 12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미사 등을 통해 한국교회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성지 개발의 필요성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이어 심포지엄에서는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겸 서울시사 편찬위원장의 기조강연에 이어 이원명(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겸 서울문화사학회 부회장)·최영준(고려대 명예교수)·조경진(서울대 환경조경학과) 교수와 차기진 박사(청주교구 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조광 교수(고려대 명예교수 및 한국실학학회 회장)가 각각 주제발표에 나섰다.
기조강연에 나선 신형식 교수는 이날 ‘역사적 도시에서 새로운 개발방향 - 서소문공원의 재개발에 즈음하여’를 주제로 서소문공원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언했다. 특히 신 교수는 “서소문 주변이 ▲노숙자의 낮잠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새롭게 되기 위해 각종 시설들을 보완 ▲서소문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정리하고 홍보해 역사성을 확보하며, 가톨릭성지로서의 구체적인 의미와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안내판 필요 ▲서소문이 서울을 지킨 수문장임을 알려야 가톨릭교회사적인 의미를 넘어서 일반인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역사문화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각 주제발표 내용 요약.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 서소문과 천주교 박해’ 주제 학술 심포지엄에서는 서소문의 교회사적 의미와 보존 방향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제언이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 주제1 ‘조선시대 서울 한양도성과 4소문 - 서소문을 중심으로’ 이원명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역사성 알리는 콘텐츠 개발 필요”
이원명 교수
최근 서울시는 서울 성곽 복원을 마친 후 서울 성곽을 유네스코 ‘세계 유일의 성곽도시’로 등재시키는 계획을 추진하는 등 ‘서울 한양도성’으로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서소문은 일제 강점기 도시계획에 의해 부근 성곽과 함께 완전히 철거된 것으로 보이고,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에 관한 내용도 서소문공원 내 현양탑을 통해서나 알 수 있다.
‘서울 한양도성’이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역사 스토리 내지 콘텐츠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서소문이 갖고 있는 ‘역사성’은 세계적인 가톨릭성지순례지로 승화시키면서 스토리 콘텐츠로 추가할 수 있다.
또한 ‘순성(巡城)놀이’를 새로운 역사 스토리 혹은 콘텐츠로 활성화할 수 있다.
‘서울 한양도성’이 그 역사 정체성과 함께 문화 및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각인될 때 서울시 문화유산에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승화될 수 있다고 본다.
■ 주제2 ‘서소문 밖 형장과 천주교인 사형’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한국교회 순교지로서 큰 의미 지녀”
차기진 연구실장
서소문 밖 형장은 태종 16년(1416년) 이후 서울의 상징적인 형장으로, 참형이나 능지처사가 가장 많이 이뤄진 곳이다.
조선 후기에 와서 서소문 밖 형장은 천주교인들의 처형장으로 가장 많이 이용됐다. 기록상으로 이곳에서 처형된 천주교인들의 수는 신유박해 순교자 31명, 기해박해 순교자 41명, 병인박해 순교자 12명 등 모두 84명으로 확인된다.
그 중에서 한국 103위 성인은 44명이며,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현지 시복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이가 20명, 하느님의 종 선정 대상자에 올라 있는 이가 2명이다. 특히 그들 중에는 박해기 교회사에서 지도자로 혹은 회장으로 활동한 경우가 많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소문 밖 형장을 가장 중요한 순교 터요 순례지(성지)로 꼽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 주제3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와 서소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 기대”
조광 교수
한국교회는 식민지 시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소문 순교지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이래 천주교 신앙은 우리 사회에도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당시 천주교가 성행했던 사실은 조선 후기 민중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현상을 드러내주기도 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비단 특정종교의 사건에만 그치지 않고, 전체 한국사의 발전에 기여한 사건으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역사전개 과정에서 서소문은 가톨릭신자들의 신앙으로 적셔진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전근대적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을 품으며 최후를 마쳤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특별한 기념이나 추모 시설이 세워진다면, 이곳은 또 다른 서울의 명소로 세계인에게 주목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 주제4 ‘조선말기 만초천 유역의 경관변화와 서소문 밖 순교성지의 위치비정’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
“천주교 금압정책 알리기 위해 이용”
최영준 교수
서소문을 중심으로 한 만초천 유역의 지리적 특성과 조선말 가톨릭 순교성지의 입지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용산을 비롯한 포구 취락은 구조가 복잡하고, 하천 수로를 통한 탈출로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관에서는 가톨릭에 귀의한 주민들의 감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둘째, 서소문 밖은 용산, 마포, 양화진 등지로 나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행형장으로 사용함으로써 조정의 천주교 금압정책을 홍보하는 경고성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셋째, 포구 위락 주민들 중에는 서해안 항해 시 서양인이나 선교사들을 접촉할 기회가 많아 위정자들의 감시 대상이었을 것이므로, 이들에게 행형 현장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넷째, 서소문은 예로부터 시신과 사형수를 내보내는 출구였으며, 행형장이 모두 만초천 유역에 위치했다.
■ 주제5 ‘서소문 공원의 미래와 비전 - 서소문 공원 재조성 개발전략’ 조경진 서울대 교수
“단절된 지역과의 연계·통합에 유리”
조경진 교수
도시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데 공원이 기여하는 바는 점점 증대되고 있다. 현재 서소문공원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있지만, 우선 장소 정체성이 없다. 또한 장소 접근성도 열악하고, 공원 운영관리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소문 공원은 그 위치와 공간 성격의 측면에서 도시 환경과 사회문화적인 여건의 변화로서 미래의 잠재성은 무척 크다.
이 공원의 재조성은 단절된 주변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연계와 통합을 위한 방안이 생성될 것이며, 이를 계기로 서소문 고가의 공원화 등이 촉진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될 것이다.
나아가 공원 내부 설계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서소문공원과 연계된 도심 내 보행자 네트워크 혹은 역사문화벨트 체계도 함께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