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한국교회 창립의 주역들 이승훈ㆍ권철신ㆍ권일신 묘 이장

입력일 2011-05-09 11:02:16 수정일 2025-05-27 17:11:26 발행일 1981-12-06 제 1283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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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성역화추위원회 11월 21일~29일에 천진암묘역으로 
이벽ㆍ권일신ㆍ이승훈 등 3주역이 한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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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의 묘지석을 들고 있는 6대손 이병규옹을 중심으로 왼쪽부터 오기선 신부, 류홍렬 박사, 변기영 신부.

한국인 최초의 영세자 李承薰과 權哲身ㆍ日身형제 등 한국천주교회 창립 주역들 중 3인이 지난 11월 21일부터 29일 사이에 천진암 성역화 추진위원회에 의해 각각 천진암 교회창립 주역묘역에 이장 안장됐다. 이승훈ㆍ권철신ㆍ권일신 등 3명이 천진암으로 이장됨으로써 천진암 성역화 추진 위원회가 천진암 강학혁에 참여한 교회창립 주역으로 꼽고있는 9명 중 이벽(79년 6월 24일) 정약종(81년 11월 1일)의 이장에 이에 5명이 천진암에 함께 모였다.

특히 이번에 이승훈과 권철신ㆍ일신 형제의 묘가 이장、창립주역중의 주역으로 손꼽는 이벽 권일신ㆍ이승훈 등 3명인의 묘는 모두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이승훈의 6대손 李炳奎 옹(72ㆍ베드로)을 위원장으로 한 이승훈 묘이장위원회는 지난 11월 28일 오전 10시 오기선 신부 주례로 인천 만수동에 위치한 이승훈 묘에서 지석확인 예절을 거친 후 지석발굴 작업에 들어가 30분만에 부인 나주 정씨(다산 정약용의 누님)의 지석을 발굴한 20분만에 이승훈의 묘지석 발굴에 성공했다.

이승훈의 묘지석은 지름 16.5cm 크기의 원형접시의 이조백자에 성균진사 이공승훈묘(成均進士李公承薰墓)라고 붓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승훈의 묘지석은 보존상태가 양호했으나 승훈의 묘지석과 비슷한 크기의 백자 그릇속에 기록된 부인 나주 정씨의 묘지석은 글자 형태만 나타날뿐 판독이 불가능한 상태로 나타났다.

이승훈을 받아 허술하게 모셔졌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예상 밖으로 아주 정교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김수길 외과의원장 김수길 박사의 검시결과 이승훈의 신장은 171cm로 추정됐다.

이날 지석발굴 확인에 이어 이승훈의 묘는 발굴 거관되어 신장성당에 안치한 후 저녁 8시 김남수 주교가 신장성당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김남수 주교는 미사 중 강론을 통해『84년도에 우리교회가 기념하는 2백주년을 이승훈의 영세 입교 귀국을 기념한 것』이라고 전재、이승훈 선생은 한국인 첫 영세자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 건설을 시작한 분이므로 『교회의 공식 복자품에 오를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천진암 성역화 추진 위원회는 이튿날 29일 오전 10시 30분 신장성당에서 변기영 신부 집전으로 장례미사를 봉헌하고 오후 2시 천진암에서 김남수 주교례로 하관 예절을 가진 다음 이벽묘소 옆자리에 유해를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