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된 사체 올바로 사용되나”
사람들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그러나 이제 이 속담도 변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의 극심한 자연 파괴로 호랑이가 멸종 지경에 이르렀다. 죽어서 가죽을 남길 호랑이 자체가 별로 없다. 몇 마리 죽지 않고 살아남은 호랑이들은 동물원에 갇혀있다. 근데 TV를 보니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는 대부분 이름을 갖고 있다. 호순이, 호돌이, 호식이 등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호랑이도 이름을 가졌으니 속담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도 남기고 이름도 남기며, 사람은 이름만 남긴다.’라는 정도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그런데 오늘 신문기사를 보니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이 속담은 또 다른 말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호랑이와 사람은 죽으면 둘 다 이름과 함께 가죽을 남긴다’라든지 아니면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만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가죽과 뼈와 인대와 유용한 의료용 원자재를 남긴다’라고 말이다.
불법 인체조직 매매
6월 22일자 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한 회사가 장례식장에서 장례 차례를 기다리는 시신들에서 가족의 동의 없이 불법으로 피부나 뼈, 인대 등을 떼어 냈다고 한다. 이렇게 불법으로 적출된 신체의 일부는 의료용 인체조직을 생산하는 회사인 ‘바이오 메디칼 티슈 서비스’를 통해 이식용 피부조직을 만들고 뼈나 인대를 추출해 치료용 재료를 만드는 ‘라이프 셀’ 회사로 보내져 의료품으로 만들어져 의료기관에 공급되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체조직들은 미 전역에 있는 병원은 물론이고 한국, 호주 등에까지 보내져 환자들에게 이식이 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신문들은 보도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은 뇌를 제외한 우리 신체의 모든 조직을 이식가능하게 하였다. 시신을 재료로 하는 신체조직을 이용한 치료법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산업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현재 시신을 이용해서 만든 의약품이나 치료제들은 수백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주름살 펴는데 사용
주름살을 펴고, 입술을 도톰하게 만들고, 음경을 확대하는데 사용하고, 요통이나 요실금 등에도 사용하며 때로는 사고로 인한 인대 수술이나 뼈 수술에도 사용하는 등 그 용도는 미용 목적에서부터 치료 목적까지 매우 다양하다.
애미 체니의 <시체중개상들>이라는 책에 의하면 사체는 손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돈을 받고 팔려져 나간다고 한다. 이런 인체조직시장의 규모는 미국에서만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록 미국의 시장규모 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규모의 인체조직시장이 형성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처럼 코를 높이고 턱을 깍고, 얼굴 주름을 펴는 등 가지가지의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나라가 드물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인체조직이식 시장도 만만치 않게 크리라 추정되어진다.
감시 감독하는 일도 중요
비록 영혼이 떠났다 하더라도 사람의 신체는 하느님의 형상을 닮아 만들어지고 하느님이 친히 불어 넣어주신 생명이 들어있던 소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후에도 정성을 다하여 망인의 장례식을 치르고 그 시신에 대하여 최고의 예를 다한다.
몇몇의 교우들 중에는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을 의학의 발전과 선행을 위해 쓸 것을 유언하기도 하고 살아 생전에 시신기증서를 작성해 놓기도 한다. 유언이나 기증서에 근거해 그의 시신이 의과대학이나 연구소에 기증되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의 시신기증 의도는 자신의 영혼을 담았던 신체가 의학의 발전이나 생명을 살리는 일들에 잘 쓰여지게 함으로써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훌륭한 신앙심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예뻐지기 위한 의학, 날씬해지기 위한 의학, 정력이 강해지기 위한 의학들도 포함되어 있다.
기증된 시신이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는 의학의 연구와 환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여지지 않는다면 시신을 기증하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단지 의약품의 원료로 전락시키는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나의 생명을, 나의 신체를 나누는 일은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나누어진 생명이나 신체가 진정으로 값지고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고귀한 생명을 물질화시키는데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기증된 생명이나 사체가 가치 있게 사용되는지 감시하고 감독하는 일도 생명윤리를 확고히 하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분야이다. 생명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지만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지는 일은 모두 선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으로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 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마르코 복음 11장 15절)
예수님도 화를 내신적이 있구나!
김명희 (마취 전문의·생명윤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