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기획/특집

미사통상문 개정안 「주님」과「주여」의 문제 -「양성씨의 비판」에 대한 비판

서정수ㆍ한양대교수ㆍ국어학
입력일 2019-07-25 13:51:59 수정일 2019-07-25 13:51:59 발행일 1990-11-18 제 1730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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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국어학을 전공하는 신자로서 미사통상문의 바른어법문제에 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동국대학 최용재교수(언어학 전공)와 공동으로 1989년 3월 4일자로 주교회의 전례위원회에「미사통상문 개정안에 관한 소견」을 낸바 있다. 이번 최종안은 어법에 관한 부문에서 아직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최초안에 비하여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다고 본다. 그동안 각계의 타당한 의견을 널리 수렴한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최근의「가톨릭신문」(10월 14일~28일자)에 실린 양성씨의 비판 내용중에 잘못이 있다고 보기에 필자의 견해를 다시금 표명하고자 한다

양성씨는 그의 글에서「주님」이라고 개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종래대로,「주여」로 해야 어법에 맞고 또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고 하였다. 양성씨는 첫째,「주여」의「~여」가 아래 사람에게하는 말이라는 주장은 일부 지방 사투리를 확대 해석한 것이며 둘째, 이「~여」형태는 교회의 창립선조들이 오래 사용한 것으로 보아 결코 잘못된 쓰임이 아니라면서 그 근거를 밝혔다.

그러나 국어사적으로나 현대 어법에 비추어 볼때 위와 같은 양성씨의 주장과 그 근거는 소박한 언어직관에서 나온 것으로서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하여 관계자들이나 일반독자들의 오해가 없도록 국어학적인 관점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현대의 어법에서 호격(呼格) 조사는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다.

㉮낮춤호격 : 야, 아 (예:철수야, 복동아) ㉯예사높임 또는 감탄호격 : 여, 이여 (예:그대여, 임이여, 친구여!). 다만, ㉯의 경우에는 조사「여」를 붙이지않고 적절한 호칭만으로 부르는수도있다. (예 : 김선생, 김인수씨, 박형 등) ㉰아주높임 : 시여, 이시여 (예 : 아버지시여, 선생이시여, 어른이시여). 이경우에도「시여」나「이시여」를 붙이지 않고「님」「선생님」따위를 써서 부르는 일이 많다(회장님, 신부님, 수녀님) 등.

일반적으로 ㉯의「여」도 아래사람에게 쓰는 것은 아니고 대개는 동등 이상의 사람을 부르는데 쓰인다. 그러나 아주 높은 분에게는 안쓰는 것이 상례이다. 그것은 자기의 스승에게「김선생이여」라 한다든지 주교나 신부에게「김주교여」「최신부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사실에서 입증이 된다. 이런 극존대 대상자에게「님」을 붙여서 부르거나「시여」를 첨가하여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볼 때 선생, 신부, 주교 등을 부를 때도 적절치 않은「여」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마구 쓰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주여」「천주여」「그리스도여」「마리아여」라고 부르는 것은 적어도 현대어에서는 하느님이나 성모를 마치 친구나 나이 비슷한 형을 부르듯이 하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이나 이런말을 익히 들어 온 이들은 오랜 타성 때문에 무감각하게 느끼고 있지만, 따져 보면 하느님을 아주 높여 부르는 방식이 아님이 명백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처럼「주여」,「천주여」를 계속쓰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옛말의 어법을 간단히 살필 필요가 있다. 중세 국어에서는 호격 조사가 다음과 같이 쓰였다. ㉠보통호격 : 아, 야 (예 : 大德아, 舍利佛아, 長者야, 得大勢야) ㉡감탄호격 : 여, 이여 (예 : 須菩提여, 觀世音이여) ㉢극족대호격 : 하 (예 : 님금하, 世尊하, 大王하, 聖母하, 父母하) 중세국어에서는 ㉠과㉡의형태는 높낮이 구분이 별로없이 두루 쓰였다. 다만㉡의「여」나「이여」형태는 애정이나 감탄을 곁들여부를때에 있다. 한편 현대어에서처럼「시여」형태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고 높은 분에게는「하」를 붙여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형태는 근대 국어에 와서는 사라지고「님」으로 바뀌게 되었다. 곧「임금님」「부처님]「부모님」등으로 쓰이게 되었다.

국어사적인 측면에서 볼때 우리 선조들이「주여」「천주여」와 같은 호칭을 쓴 것은 이해할 수가 있다. 교회 선각자들이 성경과 기도문을 우리말로 옮기었던 19세기경에는 극존대호격조사「하」가 거의 사라지고「여」형태가 높낮이에 관계 없이 두루 쓰이고 있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어에 이르러서는 이런 호격 조사 사용에서 변동이 생기게 되었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님」이나「시여」등이 발달되어 극존칭 대상자에게 쓰이고「여」는 그보다 아래의 인물을 가리키게 되었으며, 또한「아」나「야」는 그보다 더 아래 사람을 가리키는데 쓰이게된 것이다. 이런 어법의 변동으로 말미암아「여」는 손아래 사람을 부르는데도 안쓰일 뿐 아니라, 아주 높은 분을 가리키는 데도 못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 왜 가톨릭 기도문에서만 지금까지「주여」나「천주여」가 쓰이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본시 가톨릭기도서에서는 대명사 등의 사용에서 존대법을 초월하고 있었던 사실과 관련하여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구교우들은 다 잘 아는 일이거니와 우리의 성경이나 기도문에는 하느님을 가리키는데「너」(아주낮춤) 라는 대명사가 줄곧 쓰여왔다. 그런 관행은 1964년판의 기도서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베드루 갈아되 쥬야 너 내발을 씻기라 하시나잇가』(성경직해)『하늘에 계신 우리 아비신 자여 네 이름의 거룩하심이 나타나며, 네 나라이 임하시며…』(「사서성경」1939냔판 및「성교공과」1964년판)에서 보듯이「하느님」을「아비」라 하고 대명사「너/네」로 지칭하였다. 성모송에도『주 너와 한가지로 계시니』와 같이 성모님도「너」라는 대명사로 지칭하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윤형중신부는『성교회 기도문에는 천주나 성모마리아를 왜「너」라고 하는가』라는 물음을 가리키기에 적절한 대명사가 없으므로 순언어학적인 지시기능만을 고려하여「너」를 쓴다고 설명하였다. 달레(C. Dallet) 도 아시아의 말에는 문법규정과 예외규정이 있는데, 천주를「너」라고 하는 것은 후자를 개의하지 않고 전자만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컨대, 우리의 초창기 성서나 기도문 번역자들은 경어법상 규칙을 초월하여 대명사를 선택하여 천주를 가리켰고 이에 준하여 호칭도 구태여 최상칭 형태로 바꾸지않고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후 전례용어에 현지 언어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또 가톨릭교리서 등이 우리 사회에 널리 보급됨에 따라 기도서 용어에도 변혁이 이루어졌다. 다수의 외교인을 받아들이고 전교를 하는데는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1965년이래 우선「너」와 같은 대명사의 무차별 사용을 지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주여」와 같은 호칭은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보다는 문제가 덜심각하고, 우리의 귀에 익숙하여져 있었기에 그대로 두어 오늘의 이르렀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주여」「천주여」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현대 어법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무엇보다도「하느님」을 주교나 신부 또는 아버지보다도 한 차원 낮게 부르는 현상을 빚게 된다. 이런 현상은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이에게 그 위상을 설명하는데 문제가 될수 있으며, 국어의 바른 사용법에도 거슬리는 것이다.

따라서「주여」는 모두「주님」으로 바꾸어서『주님, 우리를 가엾이 여기소서. 주님 어서 오시어 저를 도와 주소서』와 같이 현대 국어 감각과 어법에 맞도록 하는것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이런 호칭방식은 아주 높임의 존대표현이 될뿐 아니라, 주님을 가까이서 직접부르는 듯한 친애감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한편「그리스도」나「마리아」와 같은 외래어에 대하여는「님」을 붙이기 어려운바가 있으므로「시여」를 첨가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그리스도시여, 우리를 가엾이 여기소서』『성모 마리아시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따위와 같이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호칭도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여」형태로 익혀온 관습에서 빚어진 느낌상의 문제일 뿐이므로 얼마 안가서 자연스럽게 통용될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한가지 덧붙여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베푸소서」와「베풀어 주소서」의 문제이다. 「베푸소서」형식보다는「베풀어 주소서」라 하는것이 현대 어법에 비추어 더 낫다고 본다.「~어 주다」형식은 어떤 간청을 할 경우에는 더 정중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서정수ㆍ한양대교수ㆍ국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