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50)티베르강에 ‘아시시’를 세우려는 교황 / 존 알렌 주니어

입력일 2024-01-31 수정일 2024-01-31 발행일 2024-02-04 제 337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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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한 영성의 상징이 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처럼
영적 비전 알리는 역할에
성 베드로 대성당 활용할 듯

2008년 3월 15일, 당시 77살로 실직자였던 한 러시아 남성이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 분위기를 즐기던 이 노인의 정체는 금세 탄로 나고 말았다. 소비에트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었다. 곧바로 프란치스코회 수사들이 몰려들어 대성당 안내에 나섰다.

이날의 경험 이후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신을 믿지 않지만 소비에트 공산주의에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보편적인 인류애를 떨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고르바초프 외에도 세계 무대의 주요 인물 중에는 아시시를 찾은 사람들이 많다.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대통령일 때 이라크 외교장관을 역임한 타리크 아지즈,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세계적인 록스타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패티 스미스 등이 대표적이다.

2022년 아직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이탈리아가 어려움에 있을 때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도 연설 장소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을 선택했다.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위로와 확신이 필요할 때 아시시를 찾는다. 당시 마타렐라 대통령은 “고난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는 함께할 때에만 팬데믹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서 “공동의 집을 위해 사랑과 봉사의 정치를 하자”고 성 프란치스코의 전구를 청했다.

전국으로 생중계된 이날 마타렐라 대통령의 아시시 방문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는 몇몇 프란치스코회 수사들만 살고 있는 예배와 순례지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2008년 이른 봄날 고르바초프가 아시시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그해 가톨릭교회의 노벨평화상이라고 불리는 ‘평화의 등불’(lamp of peace)상을 받았다. 평화의 등불상 상패는 성 프란치스코의 무덤 위에서 계속 불을 밝히고 있는 등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 상은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 유산을 보존하고 알리고 있으며, 작은형제회 수사들과 아시시의 대성당이 무대의 중심이다. 다시 말하면, 아시시 대성당은 성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유산을 지금 여기에 알리는 허브인 셈이다.

2월 1일에는 대성당 평화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린다. 「찬미받으소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유명한 ‘태양의 찬가’에서 제목을 따왔다. 심포지엄에는 이탈리아 국가환경보전기구 대표를 비롯해 프란치스코회 신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참가한다.

이에 앞선 1월 18일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배우이자 모델 이사벨라 로셀리니가 자신의 최신작 ‘다윈의 미소’(Darwin’s Smile)를 홍보하기 위해 찾았다. 그는 늑대와 이야기를 하고 새들에게 설교한 위대한 성 프란치스코 덕분에 자연과 동물들의 감정에 대한 애정을 키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19일 단행한 인사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날 교황은 프란치스코회의 엔초 포르투나토 신부를 성 베드로 대성당 홍보국장에 임명했다. 포르투나토 신부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홍보 담당이었다. 포르투나토 신부는 이탈리아 언론계에서 유명한 인사로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50만 명에 육박한다. 이를 인정한다 해도, 왜 교황의 대성당에 대변인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점이 남는다. 교황청에는 이미 대변인이 있고, 교황청 홍보부에 수백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황청이 하고 있는 홍보 활동을 넘어선 무언가를. 교황은 티베르강에 아시시를 세우려는 것처럼 보인다.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처럼 특정한 영성을 알리는 중심지와 대변자로 만들려는 것이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의 생각을 알리려는.

현재 성 베드로 대성당 수석사제는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이며 포르투나토 신부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회 출신이다. 감베티 추기경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책임자였다. 이러한 사실이 내 추측을 더 확실하게 만든다.

교황은 교황청 공보실과 홍보부에는 정치 및 교회와 관련한 홍보 역할을,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그의 영적 비전을 알리는 역할을 맡기려는 것 같다. 그의 생각이 성공할지, 아니면 홍보활동에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티베르강에 아시시를 세우는 일’을 지켜보는 일은 확실히 흥미로울 것이다.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