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예수의 작은 형제회(하)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2-21 수정일 2023-02-21 발행일 2023-02-26 제 3332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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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살며 가난한 이들과 생활

한국관구 수도자들의 모습. 예수의 작은 형제회 제공

성 샤를 드 푸코 신부의 나자렛 삶 영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져나가고 있다.

국내에 예수의 작은 형제회가 자리를 잡은 것은 1969년 9월의 일이다. 먼저 국내에서 활동해온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성인의 영성을 따라 한국 수련자 1명이 유럽에서 수련을 받게 됐다. 이어 수도회 본원에서 한국에 프랑스와 벨기에 출신 수도자들을 파견했다.

수도회가 찾은 나자렛 삶은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는 노동자로 가난한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살면서 그들 중의 하나로 사셨던 나자렛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빠르게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왔고, 산업현장과 공장들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수도회는 셋집에 자리를 잡고 노동자들의 곁에서 생활해 나갔다. 수도회는 한국 땅에서 감실 안에 계신 성체를 중심으로 공동기도를 바치고, 일터에서 노동하며 이웃들과 일상을 나누는 단순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수도회는 어느 나라에 진출하든 2~3명의 수도자가 한 자리에 뿌리를 내려 지역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지침으로 삼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매번 도시 재개발 계획에 밀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삶의 터전을 뿌리 뽑히는 아픔을 나눠야 했다. 산동네에서 변두리로, 월세와 전세를 오가면서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 주민들과 거대 건설사 사이의 이권다툼과 갈등으로 지역 공동체가 파괴되는 슬픔을 공유하면서 생활해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도 여러 젊은이들이 함께해나갔다. 젊은이들은 양성기간을 거쳐 노동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함께 모여 공동생활과 기도를 하고 형제적 우애를 통해 용기와 자존감을 길러 지역교회와 친교를 넓혀나갔다.

수도자들은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평등을 실천하고자 했고, 한국사회와 교회 안에 토착화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왔다. 수도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 안에서 또 다른 나자렛 삶을 관상해나가고 있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물질적 가난을 넘어 고독과 외로움, 소외와 버려짐, 차별과 집단 따돌림 현상까지 우리 삶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가난한 이들. 수도회는 이들 곁에서 나자렛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예수의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장 김신관(프란치스코) 수사는 “우리 수도회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꼭 물질적일 필요는 없다”면서 “양 냄새가 나는 그들 중의 하나로, 수도자들은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작은 구원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수사는 “교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관상 수도회로서는 유일한 수도회로 우리사회 현실을 반영한다”며 “성소자 감소와 형제들의 노령화라는 현실이 우리의 가는 길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