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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 마태오복음 첫 장에 왜 족보부터 나오는 것인가요?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2-12-27 수정일 2022-12-28 발행일 2023-01-01 제 332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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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과거에 묻혀 살지, 딛고 일어설지 선택해야
족보는 과거를 드러내는 것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심리치료에서도 매우 중요
있는 그대로 인정·위로해야

자신이 지나온 길, 즉 과거를 얼마나 정직하게 대면하는지는 자아의 건강상태를 알아보는 중요한 지표다.

복음서는 모든 성경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책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다보면 자꾸만 “왜?”라는 궁금증이 쏟아진다. 2023년 한 해 동안 홍성남(마태오) 신부는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연재, 복음서에 관한 신자들의 질문들을 영성심리의 관점에서 통쾌하게 풀어낸다.

마태 1,1~17(루카 3,23-38)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 중략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

▶마태복음 첫 장에 왜 족보부터 나오는 것인가요? 족보 따지는 것은 케케묵은 일이 아닌가요?◀

A.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인들을 상대로 선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유다식의 글을 올리신 것이지요. 이것은 유다인들의 인사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시골에 가면 수인사를 나눌 때 족보를 들먹입니다. ‘어떤 조상님이 어떤 벼슬을 했고 어떤 가문 출신이고’ 하면서 서로의 족보를 내보이는 인사를 합니다. 심지어 깡패들도 족보가 있고 개들도 족보가 있습니다.

왜 족보부터 들이미는 것일까요? 자신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하게 하려는 일종의 방어책입니다. 상대방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다가도 부모님이나 조상님 중에 한자리 하신 분이 계시다고 하면 “아, 그래” 하면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에 족보는 나의 정신적 입지를 갖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족보는 심리적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족보가 나의 과거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는가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숨기거나 바꾸려고 노력하곤 합니다. 족보를 뜯어고치거나 아예 새로 사는 허망한 짓을 하는 것은 과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또한 심리치료에서는 자아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고자 할 때 그 사람이 자기의 과거를 얼마나 정직하게 대면하는 지로 가늠하기도 합니다. 상담가들은 상담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나면 첫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첫 기억이란 그 많은 기억 중에서 가장 또렷이 떠오르는 기억인데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기에 상담가들이 필수적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자신의 과거가 엉망진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거가 지금 삶의 밑거름이 됐다고 긍정적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찢어지게 가난했음을, 학교도 제대로 다니니 못했음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지금의 성공이 그런 어려움을 극복한 결과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에너지도 넘치고 리더십도 강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자기 과거를 수치스러워하고 숨기거나 미화하려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건강치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가 주는 심리적 고통으로 인해 평생 짐을 지고 가듯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와 족보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다루어야하는가? 과거는 마음 안의 기억이고 상처 입은 아이와 같습니다. 자기 마음 안의 과거라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위로를 해주면 보기 싫은 과거의 모습이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를 높은 곳으로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산 정상에 오른 사람처럼 자신의 걸어온 길을 여유롭게 보게 될 것입니다.

자기 과거를 돌아보면서 자신은 한 번의 실수나 실패도 없이 살아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과거를 딛고 얼마만큼 일어서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과거 속에 파묻혀서 사느냐 아니면 과거를 밑거름으로 성공한 삶을 사느냐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자신의 족보가 아무리 형편없을 지라도 자랑스럽게 여겨질 때까지 우리 인생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