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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살레시오의 평신도 영성 / 이미영

이미영 발비나,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12-13 수정일 2022-12-13 발행일 2022-12-18 제 332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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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28일은 ‘온유의 성인이며 애덕의 박사’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서거한 지 4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제서품 때 “살레시오의 애덕과 온유함은 내 길잡이가 될 것이다”라고 서약했던 19세기의 성 요한 보스코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회를 창설하며 ‘살레시오회’라고 이름 붙인 덕분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성인이지만, 근대적 평신도 영성을 제시한 선구자로서 살레시오 성인의 삶과 가르침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습니다.

온유한 성품과 열정적인 강론으로 이름 높던 살레시오 주교에게 귀족부터 가난한 이들까지 수많은 평신도가 영적 지도를 청했는데, 그는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방식보다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하느님의 영에 응답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중 샤르모아지 부인에게 쓴 영적 지도 편지를 모아 편집한 「신심 생활 입문」은 평신도 영성을 위해 처음으로 쓰인 책으로, 오늘날까지도 평신도 영성에 관한 대표적인 신앙 고전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관상 수도자처럼 사는 게 영적인 삶이요 진정한 완덕이라고 생각하던 그리스도교 영성에 관한 오랜 통념에서 벗어나,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의 고유한 삶과 소명을 존중합니다.

살레시오는 하느님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세상과 인간의 본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성령의 은사가 다양하듯(1코린 12,1-11 참조) 각자의 처지와 직분에 따라 고유한 신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신심 생활 입문」에서 평신도가 수도자처럼 온종일 성당에 틀어박혀 기도하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노동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참된 신심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충실하게 해 준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평신도의 영성은 과도한 단식이나 고행보다는 일상에서 인내, 친절, 겸손, 청빈, 정결, 온유함 등 내면의 덕을 쌓고자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제시합니다. 그중에서도 하느님 마음에 들어 하시는 삶을 살게 하는 ‘겸손’과 이웃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게 하는 ‘온유함’이야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의 이중 계명’(마태 22,37-40 참조)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덕이라고 여겼습니다.

살레시오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우리가 덕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애덕’이며, 그 애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선을 행할 때 이 자연스러운 행위가 ‘신심’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그가 생각하는 신심 생활은 내적 성화를 위한 기도와 경건한 행위를 넘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이 일상의 구체적인 삶 안에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함’을 본받아 일상에서 ‘예수 살기’(Vive Jésus)를 실천하는 영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실천적인 신심 생활을 위해서 살레시오는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는 기도 방법을 설명하는데, 특히 매일 새로운 하루의 결심으로 시작하는 ‘아침 기도’와 잠들기 전에 양심을 성찰하는 ‘저녁 기도’를 통한 일상적인 영성 수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성당이라는 특정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일상의 삶 한복판에서 마음 안에 작은 성당을 지어 잠시 멈추어 성찰하고 하느님 사랑에 머무르는 거룩한 영적 은둔의 ‘시간’을 자주 가지라고도 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찰과 묵상이 끝나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그 결심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실천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이 마지막 주간에 네 개의 대림초에 모두 불을 켜고, 살레시오 성인이 권한 영적 은둔의 시간을 잠시 가져 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기를, 그리고 그 사랑에 힘입어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를 바라고 다짐하는 저에게, 부디 말로만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살레시오 성인이 조용히 속삭이는 듯합니다.

이미영 발비나,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