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197. 셋째 계명① (「가톨릭교회 교리서」 2168~2173항)

입력일 2022-12-13 수정일 2022-12-13 발행일 2022-12-18 제 3323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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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욕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
욕망에 휘둘리며 사는 삶은
안식 없는 노예 생활과 같아

안식일에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다인들.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다교와 달리 가톨릭교회는 일의 속박과 돈에 대한 숭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이라고 가르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유다인들은 이 법을 어찌나 철저히 지켰는지 전쟁이 나도 안식일에는 싸움을 거부해서 전멸하는 것도 감수하였다고 합니다.

안식일 법의 진정한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교리서는 “하느님의 행동은 인간 행동의 모범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렛날 “쉬면서 숨을 돌리셨으니”(탈출 31,17) 인간도 역시 ‘쉬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도 “숨을 돌리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172 참조)

사탄이 하는 일 중의 가장 큰 일은 인간이 쉬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파라오의 압제에 있을 때처럼 정신없이 일을 시켜 그것이 안식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우리도 열심히 일하여 채워지는 통장에 찍힌 돈의 액수가 안식이라고 여기지는 않나요?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이렇게 자아의 욕망에 휘둘리는 것을 안식이 없는 노예 생활이라고 하십니다.

한국의 최고 인기 강사로 유명한 이지영씨가 ‘세상을 바꾸는 15분’ 강연에 나와서 뼈를 깎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연설하였습니다. 그녀는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고 결심하여 말 그대로 죽도록 공부만 했습니다. 10년 넘게 매년 100억 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자신이 해 봤는데 세 시간만 자도 죽지 않는다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진짜 죽음이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아파도 위약금을 물기 싫어 맹장이 파열된 채 사흘이나 강의를 계속하였습니다. 의사는 이렇게 속이 망가져 온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더는 숟가락을 들 힘도 없을 때 그녀는 느꼈습니다. 큰 집, 빠른 차, 몇 대의 요트, 통장에 100억 원이 넘어도 건강을 잃으면 끝이라는 것을.

사람이 왜 쉬지 않으면 안 될까요?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셨는데 인간이 뭐라고 주일에도 돈을 벌어야 할까요? 교리서는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이날은 일의 속박과 돈에 대한 숭배에 대항하는 날이다”(2172)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파라오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진정한 안식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잃으면 무엇으로 살까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성령을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코린 2,16)

물론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은 나에게 멍에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욕망의 종살이에 지쳐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초대를 무시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안식을 찾으려 합니다. 영화 ‘기생충’에서 아들과 딸을 잃고 인디언 추장과 같은 복장을 하고 이 상황을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송강호씨 연기가 떠오릅니다. 사실 그들이 안식을 잃었던 것은 남의 집의 주인이 되려 하는 욕망이 생기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참다운 안식은 그 집의 합법적인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집 자녀와 하나가 되어 주인에게 자녀로 인정받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유일한 자녀의 마음으로 살아야 안식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