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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공포의 균형’을 넘어서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2-11-09 수정일 2022-11-09 발행일 2022-11-13 제 331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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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기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1962년 10월, 위기가 파국으로 치달아 핵전쟁이 발발했다면 미국과 소련에서 각 1억 명씩, 그리고 유럽에서는 수백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산이 있었다. 미 국방장관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가 1964년에 의회에서 이와 같은 수치를 증언했는데, 아시아에서의 핵전쟁 결과는 여기 포함되지 않았다.

1961년 9월에 나온 미국 핵전쟁 통합 계획(SIOP 62)에 따르면, 소련과의 핵전쟁이 발생하면 미국은 중국의 핵무기 시설과 주요 군사기지 및 정치 거점을 자동으로 공격하게 돼 있었다. 따라서 ‘쿠바 미사일 위기’ 때 핵전쟁이 벌어졌다면 미국은 중국 및 북한 등의 동아시아 공산주의 국가에 대해서도 핵 공격을 감행했을 것이고, 최소 1억 명 정도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이근욱 「쿠바 미사일 위기–냉전 기간 가장 위험한 순간」 참조)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자 남한에도 전술핵을 ‘재배치’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공포의 균형’이 그나마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사실 한반도에는 1958년 1월부터 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배치’됐었다. 한때는 900여 발에 이르는 수의 전술 핵무기가 남한 지역에 배치됐는데, 부시 미국 대통령의 철수 비밀명령(1991년 9월 27일)으로 모두 회수하기 전까지 주한미군은 상당한 수의 전술 핵무기를 보유·운용했었다.

미·소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전쟁 무기의 균형으로 평화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고, 상호 신뢰에서 참된 평화가 확립된다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평화가 객관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 올바른 이성의 외침이며, 대단히 바람직하고 더욱 높은 유익을 인간에게 가져올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수만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던 시절에도 핵전쟁의 공포가 있었으며, 남한에 1000개에 가까운 전술 핵무기가 배치됐던 때도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신앙인들부터 무기를 통한 ‘평화’라는 현실주의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자.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