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22)신다윈주의는 과연 완벽한 진화론인가?④

김도현 바오로 신부(전 서강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2-11-08 수정일 2022-11-08 발행일 2022-11-13 제 3318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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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꿈꿨던 ‘완성된 대진화 이론’ 아직도 요원한 상태
소진화가 긴 시간 축적된 결과
대진화 과정 발생될 수 있는지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 있어

벌이나 개미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 진화의 결과인지에 대해 마틴 노박 교수는 ‘진화 게임 이론’을 통해 규명에 성공했다. 노박 교수는 “진화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펼쳐지는 것을 설명해 준다”면서 “하느님이 없으면 절대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는 지난 글을 통해 대진화와 관련해서 진화론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아직까지 속 시원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1.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개념인가?

2. 진화의 속도는 점진적인 것인가 아니면 급격한 것인가?

3. 진화 메커니즘과 생명 현상은 분자생물학의 대상인 유전자 수준으로 환원될 수 있는가?

4. 생물의 형질은 자연선택과 얼마나 관련이 되어 있는가?

5. 개미나 벌 등에서 보이는 협동이라는 현상은 진화의 결과인가?

6. 신다윈주의만이 성공한 진화 이론인가?

이제 다섯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섯 번째 질문인 협동/협력 문제는 찰스 다윈 스스로가 제기한 것으로서 최근까지도 제대로 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진화 이론을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자인 마틴 노박(Martin Nowak·1965~) 하버드대학교 수리진화생물학 교수가 존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1920~2004)의 ‘진화 게임 이론’(evolutionary game theory)을 통해 다윈이 생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 ‘협동/협력의 진화 메커니즘’을 5가지 규칙으로 설명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노박은 특이하게도 스스로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면서 ‘진화론이 결코 신앙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해온 인물입니다. 노박은 “과학과 종교는 진리를 찾기 위한 두 본질적 요소이며, 이 둘 중 하나를 부인하는 것은 불임으로 가는 방식(barren approach)”이라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마틴 노박이 2011년 유명한 과학 잡지인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견해를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진화에 관한 순수한 과학적 해석은 무신론을 선호하는 주장을 만들지 않는다. 과학은 하느님을 부정하거나 종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중력이 그렇지 않듯이, 진화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주장이 아니다. 진화는 지구상에서 생명이 펼쳐지는 것을 설명해 준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그분이 없으면 절대 진화가 일어나지 않는’ 분인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입장 역시 노박의 입장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여섯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진화론자들과 생명과학자들이 당연히 “Yes”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생명과학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로서 큰 관심을 불러오고 있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출현함으로 인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이론이었던 라마르크주의가 서서히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후성유전학은 ‘유전자 자체가 아니라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한 세대에 특정하게 후천적으로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최신 유전학입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DNA 염기 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고, 더 나아가 대를 이어 유전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죠.

특히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여러 연구팀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 연구 모두 어린 시절 유해한 환경에의 노출이 성인기 만성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중 혹은 어린 시절에 겪은 영양 부족 혹은 과잉, 출생 후 초기 성장의 변화 등은 주요 대사 기관의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후손의 조직 기능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그 한 가지 중요한 예로서, 산모의 ‘식생활’이 자녀와 그 후손들의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특히 임신 중에 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한 산모가 낳은 자식(2대)들은 나중에 당뇨병에 걸리며, 그 자식들의 자식들(3대)까지도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쥐 실험 결과 나타났습니다. 이는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환경 노출의 영향을 여러 세대에 전달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 후성유전학의 핵심 내용인 ‘한 세대에 특정하게 후천적으로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주장은 바로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주의가 사실상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의 학문적 성과가 많이 쌓여갈수록 라마르크주의는 20세기의 절대적인 진화론이었던 신다윈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리거나 적어도 두 이론이 공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후성유전학은 기존의 진화론과 다른 새로운 진화론의 출현을 기대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앞서 언급된 모든 진화론자들은 ‘한 종으로부터 다른 새로운 종으로의 대진화가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류 대진화 이론이라고 부를 만큼 두드러지게 영향력이 있는 이론은 현재까지도 존재하지 않고 있으며, 학자들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대진화를 이해하고 있다 보니 결국 다양한 이론들이 난립해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소진화가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됨으로써 결국 발생되는 대진화’를 당연하게 염두에 두고 있고 진화론에 관한 거의 모든 교과서들도 이를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소진화의 메커니즘을 충분히 긴 시간 동안 그대로 적용하면 정말로 한 종에서 다른 새로운 종으로의 대진화 과정이 자연스럽게 발생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 속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종의 기원」 출판 이후 100여 년의 진화론 역사 안에서 다양한 진화론적 발전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찰스 다윈 본인이 완성하려 시도했고 미래에 완성될 것을 꿈꾸었던 ‘완성된 대진화 이론’은 아직도 요원한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김도현 바오로 신부(전 서강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