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21)전주교구 전동성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11-02 수정일 2022-11-02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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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순교터에 세워진 성당… 전통의 도시 더욱 풍요롭게 만드네
복자 윤지충·권상연 순교한 곳
1908년 건축 시작해 1931년 축복
한옥마을·경기전과 어우러져 눈길

전동성당 외부 전경. 지난 2년 동안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마치고 올 7월 건물 외벽에 있던 공사 구조물을 제거해 온전한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완전한 고을’을 뜻하는 전주(全州)에는 역사와 전통의 유적과 명소, 문화시설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전주 도심에 있는 전동성당과 경기전, 한옥마을과 전시 공연장은 오래된 도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전동(殿洞)성당(주보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적 제288호)은 한옥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다. 전동이란 이름도 경기전(慶基殿, 사적 제339호)이 있는 동네란 뜻이다.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것이 일어난 곳’을 말하는데 작은 궁전처럼 꾸며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봉안하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다른 왕의 어진, 경기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어진 박물관이 있다.

경기전의 여러 건물 사이에서도 전동성당의 정면 종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동성당은 평지에 있지만 경기전과 한옥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망루처럼 보인다. 성당 전면의 12개 창을 가진 중앙 종탑부 돔과 8각형 창을 낸 좌우 돔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울 도심에 아버지 같은 명동대성당이 있는 것처럼 전주에는 어머니 같은 전동성당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두 성당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전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터에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의 신앙 선조 가운데서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 1759~1791)과 복자 권상연(야고보, 1751~1791)이 신해박해(1791년) 때 순교한 곳이다.

또한 신유박해(1801년) 때 ‘호남의 사도’로 불린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과 복자 윤지헌(프란치스코, 1764~1801), 김유산(토마, 1760~1801), 이우집(1761~1801) 등이 이곳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이곳은 전라도 중진영(中鎭營)과 큰 장터가 가까이 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풍남문 밖이어서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다.

호남의 모태 본당인 전동성당을 건축한 사람은 초대 주임 보두네 신부(Baudounet, 1859~1915,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한국명 윤사물, 파리 외방 전교회)이다. 프랑스 아베롱(Aveyron)에서 태어난 그는 1884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에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1889년에 이곳으로 부임하였다. 1908년에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1914년에 외형 공사를 마치고 다음 해에 선종하였다. 이어서 제2대 주임 라크루 신부(M. Lacrouts, 마르첼로, 파리 외방 전교회)가 193평에 이르는 내부공사를 17년 동안 마무리한 후 1931년에 축복식을 했다.

보두네 신부와 후임 본당 신부들은 매우 어려웠던 때에 적은 수의 신자들과 함께 온갖 정성으로 전동성당을 건립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주성 인근에 대로를 내면서 성벽 대부분을 허물었는데, 그때 순교의 증인 역할을 했던 성벽의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

전동성당 내부 전경.

경기전에서 바라본 전동성당.

전동성당의 설계는 명동대성당 건축에 참여한 프와넬 신부(Victor Louis Poisnel, 1855~1925, 파리 외방 전교회)가 하였다. 명동대성당은 후기 고딕 양식이지만, 붉은색과 회색 벽돌조의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의 혼합 양식으로 보인다. 프와넬 신부는 전동성당을 설계하면서 전주 사람들에게 뾰족당 같은 성당이 아니라 다양한 성당 건축을 보여주기 위해 색다른 전동성당을 설계했을 것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에는 어두운 느낌이지만 조금 있으면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성당 내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눈앞의 제단 부분은 세상과는 다른 성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주고, 반달 형태의 천장은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다. 바깥 거리의 번잡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당이 다가온다. 내부 유리화 중에서 신자석 주변은 김겸순 수녀(데레시타, 노틀담 수녀회)의 작품이고, 제단 주변과 위층의 유리화는 마르크 수사(떼제 공동체)의 작품이다. 두 작가는 유리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 하단에 관련된 성경 구절을 써넣었다.

앞마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터 표지석과 여러 성상이 있다. 특히 이곳에서 순교한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의 조각상이 눈길을 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굳건히 지킨 순교자들과 만날 수 있다. 성당 입구의 정원에는 성당을 건축한 보두네 신부의 흉상이 있다. 그는 여전히 성당을 바라보며 오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성당 옆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서 많은 사람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근처에 있는 편의 시설이나 외부 화장실도 오가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여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1926년에 건립한 3층 규모의 사제관(전북 문화재 자료 제178호)은 100년 동안 성당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에도 본당에서 사목하는 사제가 거주하며 건물을 돌보기 때문에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넓은 성당 구역에는 순교자 기념관(2011년 건립, 명칭은 기념관이지만 지금은 성심 유치원과 소성당, 회합실·다목적실로 사용)이 있다. 인접한 성당을 돋보이게 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2층으로 낮게 지으면서 붉은 벽돌과 회색 돌로 외부를 치장하였다.

지난 2년 동안 전동성당의 건물 보수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올해 7월에 건물 외벽에 있던 공사 구조물을 제거하자 아름다운 성당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새롭게 단장한 전동성당을 찾은 날이 주말이어서 마당과 내부는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만난 본당신부는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찾는 것을 반기면서도 조용히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성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고 말하였다. 100년이 넘은 전동성당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유물 전시관을 현 사제관 건물에 꾸미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도 비치었다.

전동성당과 가까운 곳에는 치명자산성지도 있다. 해발 300여 미터의 산정에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유항검과 그의 가족 6위가 합장된 가족 순교자 묘가 있다. 치명자산에는 1994년 건립된 기념성당과 십자가의 길, 성모 동산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전동성당

주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51

전화: 063-284-3222

미사: 평일 월~토 오전 6시, 화~금 오전 11시

토요일 오후 4시. 6시

주일 오전 6시, 9시, 10시 30분, 오후 5시

■ 치명자산성지

주소: 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92

전화: 063-285-5755

미사: 매일 오전 11시

첫 토요일 성모 신심 미사: 오후 4시

(미사 시간은 변동될 수 있으니 확인 필요)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