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독서의 계절 즐기는 시각장애인 만난 곳… 부천 ‘해밀도서관’을 가다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6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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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점자 닿으면, 캄캄한 눈 앞에 빛이 들죠”
점자책 이외 ‘시각대체자료’ 중요
인천가톨릭사회복지회 해밀도서관은
녹음 책·큰 글자책 등도 갖추고 있어

700명 중 200여 명이 타지역 회원
시각장애인 위한 복지서비스도 운영 
각종 지원과 후원·봉사 등 관심 절실

점자책을 읽으며 환하게 웃는 임종남씨.

사락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가 어울리는 가을이다. 책을 펴면 세상이 보인다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책은 ‘그림의 떡’조차도 될 수 없다. 예수님처럼 눈먼 이들을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책 읽는 기쁨을 전할 수는 없을까? 11월 4일 점자의 날을 맞아 시각장애인도 책 읽는 기쁨을 느끼도록 돕는 도서관, 인천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해밀도서관(관장 이상희 마르티노 신부)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 책’ 읽는 도서관

경기도 부천시 옥산로10번길 4 해밀도서관 3층 열람실. 한 이용자가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용자는 손끝으로 책을 훑어나갔다. 그는 책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읽었는지 이따금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언뜻 보니 검은 글자가 하나도 없는 새하얀 종이였다. 하얀 지면에 올록볼록 튀어나온 수많은 작은 돌기들, 바로 점자가 담긴 책을 읽는 모습이다. 해밀도서관 3층 열람실은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는 공간이다.

도서관을 찾은 임종남(토마스·70)씨는 “점자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웃었다. 해밀도서관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독서동아리회장을 맡고 있는 임씨는 “시력을 잃기 전에도 책을 좋아했는데, 이제 눈은 보이지 않지만 책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면서 “집에서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눈이 보이는 이들이 묵자(墨字)로 인쇄된 책을 읽는다면, 보이지 않는 이들의 종이책은 점자다.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는다하면 점자책이 대표적으로 떠오를 수 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책은 점자책만은 아니다. 점자를 읽으려면 손끝의 감각도 발달해야하고, 충분한 훈련도 필요하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이 사고나 질병으로 성인 이후에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다보니 점자를 익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시각장애인의 5%가량만이 점자를 읽을 수 있다.

해밀도서관 장서 중에는 점자책 이외에도 여러 ‘시각대체자료’가 있다.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책 내용을 음성으로 녹음한 책이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녹음 책은 소리로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점자단말기를 통해 점자와 소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시력이 약하지만 볼 수는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큰 글자 책도 있고, 음성을 녹음해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책도 있다.

점자책을 읽는 임종남씨의 손.

더 많은 이들이 책을 읽도록

해밀도서관은 이런 시각대체자료, 즉 점자, 큰 글씨, 녹음 책을 유형별로 1만7000여 권 정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쏟아져 나오는 묵자(墨字)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그만큼 시각장애인들은 원하는 책을 구하기 어렵다.

이에 도서관 자체적으로 시각대체자료를 제작해나가고 있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점자는 자음과 모음이 한 글자에 담긴 한글과 달리 자음과 모음을 각각 표기해야하고 손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커야한다. 그러다보니 묵자책을 점자책으로 옮기면 분량이 약 3배 정도 늘어난다. 점자를 번역·교열하고 점자인쇄기로 인쇄해 제본하는 과정도 그만큼 더 필요한 셈이다. 녹음 역시 녹음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런 시각대체자료 제작은 지원과 후원금, 봉사자들의 재능기부 등에 의존하는 만큼, 책을 제작하기 위한 자본과 인력도 크게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은 해당 지역민들이 사용하지만, 해밀도서관은 책을 구하기 어려운 전국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지역에 관계없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다. 도서관 시각장애인회원 700여 명 중 200여 명이 타지역 이용자다. ‘책나래 서비스’를 이용하면 도서관을 방문할 필요 없이 무료로 집에서 책을 대출할 수 있다. 지역 내에 거주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시각장애인을 위해 방문대출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또 시각장애인들이 책이나 정보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점자단말기를 대여하고 있다. 점자단말기는 시각장애인들의 컴퓨터라고 불릴 정도로 책을 읽거나 정보를 접하는데 유용한 장비지만, 가격이 비싸 개인이 구매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해밀도서관에서 시각대체자료 제작을 돕고 있는 사회복지사 조혜영(루치아)씨는 “비장애인들이 정보를 접하는 게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시각장애인들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이 있어야 시각장애인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인데, 시각장애인들은 원하는 책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더 많은 시각대체자료 제작 지원 봉사나 기술지원 등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보여도 보이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는 곳

해밀도서관의 특징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라는 점이다. 도서관 4~5층에는 일반도서가 비치돼있어 도서관 내에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고, 도서관 내에 ‘해밀 점자 역사 전시관’을 조성해 비장애인들이 점자에 관해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비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고 있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만나 직접 책을 읽어주는 대면낭독 프로그램, 독서동아리, 도서낭독 등의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용자들이 모두 신자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들에서 조명연(마태오) 신부의 「맘고생 크림케이크」 등 교회 내 책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해밀도서관은 단순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열람이나 대출업무에 머물지 않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흰 지팡이를 활용해 걷는 법이나 컴퓨터·스마트폰 사용법을 일대일로 교육하기도 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해밀도서관에서 책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이어주고, 시각장애인이 삶의 활력을 얻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도서관 관장 이상희 신부는 “정보를 접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에게 인간으로서 존귀함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시각대체자료 책들”이라면서 “일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하는 우리들이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데 관심을 지니고 동참하는 것은 신자로서의 사명이고 소명”이라고 말했다.

※후원계좌: 신한은행 100-032-026591(예금주 해밀도서관)

해밀점자역사전시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