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상강(霜降)에 피는 꽃도 있다 / 한경옥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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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섯에 대학원에 입학하는 내게 가족들의 교육이 시작됐다. 남편은 나잇값은 지갑으로 하는 거라고 밥과 커피를 자주 사란다. 아이들은 어른노릇 하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을 박는다. 특히 딸은 여학생들이 배꼽티를 입었어도, 머리를 무지개 색으로 염색했어도, 담배를 피워도 ‘예쁘다, 멋있다, 잘 한다’고만 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래야 젊은이들에게 따돌림 당하지 않는다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학교에 간 첫 날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우리 딸 또래의 남학생이 오더니 “누님!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니랑 동갑이십니다” 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학과장님 조교였다. 잠시 후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언니! 우리 과에 입학하신 걸 환영해요” 하고는 다른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우리 과 학회장이다. 그렇게 나는 55세에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의 언니와 누님이 되었다.

예술대학원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학생들이 방송국 PD, 감독, 아나운서, 배우, 성우, 가수, 영화사 대표 등 각종 예술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평범한 가정주부인데다 최고령인 나를 자기들과 같은 학우로 대해주었다. 교수님들도 나를 특별히 더 챙기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주셔서 좋았다.

학우들 덕분에 나는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3교시(2교시까지의 수업이 끝나고 근처 호프집이나 치킨집에서 갖는 친목의 시간)까지도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끼는 걸 싫어할까봐 슬쩍 빠지려고 했다. 그런데 모두들 학교에 들어왔으면 무슨 일이든 함께 해야 된다며 손을 잡아주었다. 남편 말마따나 지갑을 열려고 하면 경제 활동하는 자기들이 있는데 가정주부가 왜 그러냐고 한사코 말렸다.

예술대학원이라 그런지 모두들 끼가 있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일례로 종강파티 날이었다. 끝나고 나와서 먼저 온 택시에 교수님을 태워드리고 일동이 허리를 반으로 접고 큰 소리로 “교수님 안녕히 가십시오” 했다. 다음에는 나를 태우고 똑같은 자세로 “누님, 안녕히 가십시오” 하니 택시 기사분이 백미러로 나를 흘끔흘끔 본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누님이라는 호칭으로 배웅을 받는 내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한가 보다. 슬쩍 장난기가 발동하여 남편 부하들이라고 하자 갑자기 운전을 조심스럽게 한다. 아마도 내가 조폭 마누라 쯤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 학기 개강파티에서 그 얘기를 하니 그럴 듯했다고 박장대소를 했다.

나는 가정주부도 전문가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주부인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로 했다. MT에는 김치를 담고 해물전을 반죽해갔다. 또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직장에서 오느라 저녁을 못 먹고 등교 하는 걸 알고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주먹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등 메뉴를 바꿔가면서 매번 10개 이상의 도시락을 싸 갔다. 배고팠는데 고맙다며 도시락을 나눠먹을 때 가슴이 뿌듯했다. 덕분에 졸업 후에도 동문들을 만나면 도시락 얘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나는 ‘문콘의 엄마’라는 호칭을 또 하나 얻었다.

얼마 전 학교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문득 ‘이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닐 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한경옥 마르가리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