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91세에 신·구약성경 필사 마친 정자동주교좌본당 박영순씨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10-12 수정일 2022-10-12 발행일 2022-10-16 제 3314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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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써 나갑니다”

60세 넘어 신앙생활 시작
종이 여백에 복음 쓰다가
필사에 재미 느끼고 이어와

“행복하다, 행복하다 말하면 정말로 행복해지잖아요. 성경을 필사하는 건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인 것 같아요.”

제1대리구 정자동주교좌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성경필사 봉헌운동에서 최고령으로 성경 전체를 필사한 박영순(요세피나·91)씨는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행복하여라”라고 말했다. “행복하여라”는 성경 전체에 걸쳐 50번도 넘게 나오는 구절이다.

그 “행복하여라”를 50번도 넘게 쓴 덕분에 박씨에게 정말로 행복이 찾아왔다. 박씨는 최근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아 3년에 걸쳐 필사한 신·구약 성경 전권을 봉헌했고, 지난 9월 25일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미사 중 표창장과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마련한 선물을 받았다. 박씨는 “이거 받으라고 지금까지 살게 해주신 것 같다”면서 행복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예전에는 종이가 귀했으니까 빈 종이는 그냥 못 버리고 글씨 연습 삼아 뭐라도 적어서 버렸어요. 전단지며, 아이들이 쓰고 남긴 공책이며 빈 종이에 복음을 썼는데, 그게 버릇이 됐죠.”

60세가 넘어 신앙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빈 종이에 복음을 썼다. 박씨는 “그때는 신·구약 전권을 쓰는 건 감히 생각도 못해봤다”고 했다. 하지만 복음쓰기라는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됐다. 박씨는 복음을 쓰는 일이 버릇이 될 때쯤 ‘신약은 짧으니까 쓰는데 까지만 써보자’라는 생각으로 신약 필사를 시작했고 결국 성경 전체를 필사했다. 그러는 와중에 은빛여정 과정도 모두 수료했다.

“공원을 걸을 때 앞 사람 발을 따라가면 힘들어서 얼마 못가요. 내 걸음속도로, 내 마음대로 걸으면 몇 바퀴도 걸어요. 내 마음대로 하느님을 찾아가면 되지요.”

젊은이들도 성경 필사라면 어렵다하는데, 90세가 넘는 고령에 성경필사를 끝낸 저력은 어디서 왔을까. 박씨는 성경필사의 비결을 ‘공원 걷기’에 빗댔다. 젊은이들처럼 빠르고 힘차게 걸을 수는 없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걸으면 끝까지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성경을 필사하다가도 힘이 들면 그대로 휴식을 취한다.

박씨는 여전히 자신의 속도대로 성경 필사를 한다. 요즘은 역대기 하권을 필사하고 있다는 박씨는 “나이가 들다보니 옛 생각이 나는데, 힘들었던 생각이 나면 우울해지기도 한다”면서 “성경을 쓰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고 했다. 이어 그런 것들도 다 “하느님의 뜻에 맡긴다”며 “하느님 뜻에 맡기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인생에서 나온,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지혜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어요. 힘든 일도 오는데 피할 길이 없지요. 피하려 하면 더 힘들어져요. 힘든 일은 하느님 뜻에 맡기고 어깨너머로 넘겨요. 그렇게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즐거움이 와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